저하기 나름
저하기 나름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7.09.0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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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 백인혁

천고마비의 계절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어디 가나 풍성함이 넘치는 시절에 행복하지 않을 바가 없을 것 같은데 지금도 고뇌에 차 노심초사하며 스스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자신이 구하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일 것입니다. 어떻게 구하려 했기에 얻어지지 않았을까요? 혹 힘없는 사람에게는 힘으로 눌러서, 힘 있는 사람에게는 아부를 해서 얻으려 한다든지 그래도 얻어지지 않으면 나중에는 상대방을 속여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한 결과는 아닐까요?

조용히 눈을 감고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는 지금 행복이 저쪽에 있으니 저 사람에게 있는 행복을 내게로 가져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조해 볼 일입니다.

정치인들은 선거철이 다가오면 선거권을 가진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사정합니다. 그 한 표가 당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생물이라 여기는 물조차도 그것이 가진 권능을 무시하고 함부로 하면 결국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물며 다 고만고만 비슷한 능력과 비슷한 역량을 가진 인간들끼리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서로 공경하고 위해 주며 도란도란 살기에도 짧기만 한 인생인데 상대방을 원망하고 미워하며 더군다나 상대방이 가진 것을 빼앗는 데에 인생을 다 허비해 버린다면 어찌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그럼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행복해 보이는 다른 사람의 삶을 아무리 기웃거려 보아도`아 이것이 행복이구나!'싶은 경우가 별로 없지요. 그러나 스스로 이만큼 사는 것도 행복이야 하면서 지금의 형편을 다행으로 알고 이것도 다 내 복이라 여기며 사는 사람은 아마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행복이란 돈이나 물건처럼 다른 사람과 주고받는 물건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속에서 행복을 찾아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어서 함께 사는 상대방들은 그저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주며 행복하기를 빌어줄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자기 맘속에 있는 행복을 끌어내 사용하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안다면 참 좋겠지요. 오늘은 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가을 어느 날 고추를 따서 멍석에 말리고 있었습니다. 청명하던 날씨가 갑자기 변해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잘 말라 검붉게 변해가던 고추가 빗물에 흠뻑 젖어버렸습니다. 밭에서 힘들게 일을 하다 집에 들어오신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시고 “자식이 일곱이면 뭣 허냐! 소나기가 내리면 달려와 다 말린 고추 하나 덮어줄 놈이 없는데~” 하시며 “미움도 예쁨도 다 저하기 나름이여”라며 속상해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이 말씀은 저의 머릿속을 멍하게 만들었습니다. 평소엔 없이 살아도 자식들을 애지중지 키우시며 차별 없이 대하시던 어머니의 이런 말씀은 저에겐 충격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사랑하실 줄만 알았던 어머니도 우리를 미워하실 수 있겠구나!”하는 깨침이었다고나 할까요.

이후로 저는 “모든 것이 저하기 나름이라 하셨지!”라는 생각에 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말도 하고 행동도 하며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를 만난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참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지만 그 말씀은 참으로 제가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하는 열쇠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마치고 겨우 한글만 깨친 마흔넷 짧은 생을 살다 가신 제 어머니. 비록 짧은 생을 살다 가셨지만 모든 원인을 저쪽에서 찾지 말고 내게서 찾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신 소박한 교훈이 오늘따라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인생을 살면서 잘 풀리지 않은 일일수록 없는 것 없는 내 마음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듯 행복도 내 맘속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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