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자본주의의 서글픈 세태
극자본주의의 서글픈 세태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7.09.03 1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 연지민 취재 3팀장(부국장)

여자를 공에 비유한 유행어가 한참 회자된 적이 있다. 공을 쫓는 사람 수와 여자 나이를 그럴듯한 값으로 매겨 놓고 웃게 했던 유행어였다.

언젠가는 매 맞는 남편 시리즈가 회자됐다. 내용인즉, 50대 남편은 반찬투정했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맞고, 60대 남편은 아내에게 어디 가느냐고 묻는 것만으로도 매를 맞는다는 이야기다.

남편이 나이가 들수록 맞는 이유는 더 살벌하다. 70대 남편은 단지 아침에 눈을 떴다는 이유로 맞고, 80대 남편은 집에서 잔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맞는다. 늙을수록 서럽다지만 사회적으로 물리적으로 힘이 떨어진 남편에 대한 위상을 반영한 세태 풍자다.

이 말이 유행할 때만 해도 친구들과 파안대소하며 가볍게 넘겼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불과 2~3년 사이 노인문제가 사회문제가 되면서 체감하는 매 맞는 남편시리즈는 현실의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 매 맞는 남편에 비하면 페미니스트라도 공에 비유한 여자는 웃음으로 넘겨야 할 분위기다.

최근에 유행하는 말로는 “너희 할아버지 계시니?”가 있다. 앞뒤로 낀 세대들은 할아버지가 계신다고 답해야 할지, 안 계신다고 답해야 할지 난감하겠지만 계신다고 대답해야 환영을 받는단다. 100세 시대에 부모님께는 기대할 재산이 없고, 아들보다 손자를 예뻐하는 할아버지는 빠른 기간 안에 손자에게 재산을 물려줄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맞는 남편보다 훨씬 부드러운 표현인듯하지만 속뜻이 무섭긴 마찬가지다. 왠지 허탈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현실 풍자다. 웃음의 발화가 보편화되면서 서글픈 현대인의 자화상은 곳곳에서 목도된다.

이처럼 유행어는 시대를 반영한다. 말 자체의 재미와 발음형태가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유행의 원인이 된 사람의 영향력이나 사회문제 등에 따라 말은 급속히 퍼진다. 문제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그 시대의 모습을 이해하는 잣대가 되기에 유행어를 단순히 유행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세태풍자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는 어느 나라보다 심각한 자본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극자본주의사회로 치닫고 있는 사회의 현상이 그대로 투영된 말 속에는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왜곡된 인식과 문화가 똬리를 틀고 있음이다.

자본의 힘은 사회 곳곳에 괴물들을 양산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극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이 불안의 늪.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좇게 만드는 사회. 미래에 대한 불안이 현실을 더 무겁게 압박하는 사이 돈의 힘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공평한 사회를 무너뜨리고 이기의 사회로 내달리게 하고 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일도 비일비재해지고, 하루가 멀다 하고 돈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자본이 생명을 잠식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살충제 계란이 버젓이 유통되고 간염 바이러스가 있는 햄과 소시지가, 용혈성용혈증후군 햄버거가, 발암물질이 내포된 생리대가 판매되고 있다. 무엇을 믿고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국민은 불안 속에 살고 있다. 대안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 우리 모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두렵기마저 하다.

자본의 문제는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 자본에 노출된 삶에 획기적인 사회 변혁없이는 우리의 삶도 나아지기 어려울 것이다. 빨리빨리로 대표되었던 한국의 사회문화가 느리게 사는 정신문화를 지향해 나갈 때 극자본주의의 파멸도 유예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