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 집 한 채
길모퉁이 집 한 채
  • 김경수<수필가>
  • 승인 2017.08.3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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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경수

포크레인 엔진 소리가 굉음을 울리며 요란스럽다. 얼마 후 길모퉁이 작은 집 한 채가 영원히 사라졌다. 엊그제까지 딸기코 영감 부부가 살던 집이었다. 그는 술을 좋아했다. 그리고 욕심이 없는 듯 악착을 떨며 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집을 비워 주는데 마지막까지 머뭇거리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딸기코 영감은 이 집을 지키기 위해 한 때는 가난과 싸워야 했었다. 그 옛날을 거슬러 아버지의 아버지가 어린 시절 장례 빚으로 머슴살이 가던 날에도 이 집을 결코 손에 놓을 수 없었던 집이었다. 또한 그가 한순간 멀리 타국까지 돈을 벌러 가야 하던 시절도 이 집과 가족을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정든 집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끌어안고 어루만지며 쓸고 닦은 둥지였다. 지금은 텅 빈 구석에서 오가는 티끌을 주우며 쌓아가고 있지만 한때는 누대를 누리며 오순도순 옛이야기가 도란도란 익어가던 곳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여생을 기대고 싶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옛 터전만 눈 끝에 선하게 일렁거리며 흔적마저 사라져 간 곳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어느 건물 뒤뜰에 울타리가 되어 가로등을 지키다가 적막한 밤을 지새우고 나면 어쩌다 굴러온 짐들이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집 앞을 오가며 지나갈 때 수군거렸다. 그들 눈에는 보기 싫은 혹 하나가 붙어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낡은 집 하나로 한 몫을 잡으려고 한다는 둥 혹은 갈 곳이 없어 오죽하겠느냐는 둥 툭 내뱉는 말로 던지며 지나갔다.

그러나 갈 곳이 없어서 저렇게 버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이 없을 수도 있고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또한 낡은 집으로 한 몫을 잡으려고 한다 해도 만만하게 받아줄 세상도 아니었다. 딸기코 영감은 이런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미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사람들은 딸기코 영감을 통해 그들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딸기코 영감에게 집은 무엇이었을까? 보통사람들처럼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지내는 생활과 휴식의 공간이었을까? 물론 평범한 일상 외에도 그의 모든 향수와 그 집에 정이 서려 있는 애환의 내력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집을 준다 할지라도 낡은 처마 밑에 빗물이 새고 별빛이 보여도 그 집을 떠나는 것이 그리 쉽고 간단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에게 집은 무엇보다 떠나고 싶지 않지만 떠나야 하는 자의 집을 잃어버린 상실감이라고 할 수 있다. 누대로 살던 집을 비워주고 떠나야 하는 집에 대한 착잡한 갈등과 강한 집착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상의 차원과는 그 의미를 달리하는 별개의 이유가 될 것이다. 어쨌든 마음 한구석에는 그리움이 각인되어 남아 있을 거라고 사료된다. 이별은 그 대상이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이라도 국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딸기코 영감의 집과 여러분의 집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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