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에 대한 이해
장애에 대한 이해
  • 박경일<명리학자>
  • 승인 2017.08.30 2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리로 보는 세상이야기
▲ 박경일

오해와 달리 장애인의 90%는 후천적으로 장애를 입는다. `장애인들은 대부분 선천적으로 장애를 입을 것이다.'라는 착각은 장애를 우리와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쯤으로 인식하게 한다.

하지만 누구나 늙어 병드는 것처럼 우리 모두 미래에 장애를 입게 될 것이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없듯이.

장애란 영구적으로 또는 상당히 오랜 기간 불편함을 겪는 것인데 불편한 자체는 장애가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외적인 요인이 장애를 더욱 가중시키는 경우도 많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계단을 오르려 한다면 장애(불편함)를 겪겠지만 승강기가 있는 건물이라면 계단을 오르는 데서 오는 장애는 사라진다. 인지적인 부분이 천천히 발달하는 장애를 가진 친구에게 일반적인 교육과정의 틀에 맞추려 한다면 장애를 겪겠지만, 그의 발달수준에 맞추어서 교육과정을 수정하여 적용한다면 기존의 틀에 맞추려 하는 데서 오는 장애는 없어질 것이다.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자유로이 이동하는 장애인을 자주 볼 수 없는 이유는 장애를 겪지 않게끔 지원해주는 사회적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불편함을 나의 불편함으로 느끼는 정도까진 아니어도 미래에 우리도 장애인이 될 것이라는 진실을 마주한다면 언제나 남의 일 같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수화공연을 보고 난 청각장애인에게 어떠냐고 소감을 물으면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대답을 들을 것이다. 우리 눈에야 수화공연이 뭔가 장애를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몸짓 같지만 정작 소리를 듣는데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적막한 무대 위에서 수화로 가사를 읽어주는 그저 그런 요식행위처럼 여기지 않을까. 그보다 TV나 인터넷으로 방송되는 모든 프로그램들과 행사장에 자막과 수화통역사를 배치하도록 힘쓰는 것이 오히려 더 감동적일 것이다.

지하철역 구내에서 점자로 된 안내표지판을 읽던 시각장애인 친구가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이 점자 표지판이 여기 있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지?'라고. 듣는 순간 `그렇구나! 이것도 비장애인 입장에서 만든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장애인에게 도움을 줄 때 가장 먼저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라고 묻는 것이 예의인 것처럼 건물을 짓거나 새로운 물리적 환경을 조성할 때 장애인들에게 먼저 `이렇게 하면 불편함 없이 이용하실 수 있겠어요?'라고 물어봐 주는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거리 여기저기에 노랗게 색이 입혀진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을 보지만 우린 실제로 시각장애인이 그것을 밟고 길을 안내받으며 가는 모습을 본 일이 없다. 보여주기 식이다. 그 예산을 제발 장애인을 위한 다른 곳에 쓰길 바란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편한 것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편하다.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편한 세상이 우리에게 불편할 리가 없다.

미국의 포드 자동차회사 사장이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포드에게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라고 이 말을 바꾸어 표현하고 싶다. `장애인에게 좋은 것은 우리 모두에게도 좋다.'라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