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는
그 섬에는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7.08.2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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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수필가>

그 섬에 가고 싶다. 꿈꾸는 것처럼 보이는 신비스러운 그곳에 가고 싶다. 다녀온 사람들마다 후기가 제각각 다르다. 좋아서 자꾸만 가고 싶어진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볼 것이 없어 밋밋하다고도 한다. 나에게는 머릿속에 그려보며 그리워하는 섬. 울릉도이다.

그리 내키지 않아 하는 그이를 향하여 며칠에 걸쳐 노래를 불렀다. 음치인 내 노래를 더 이상 듣지 못하겠는지 그이가 휴가여행지로 허하였다. 2박3일을 그 섬에서 보내기로 한 것이다. 여행은 늘 가기 전의 준비로 들뜬다. 막상 떠났을 때보다 전날의 설렘이 좋다. 그이는 기대되지 않는 눈치다. 혼자서 앞선 뱃멀미를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불청객인 멀미도 여행 일부이지 싶다.

드디어 섬에 오르는 배를 탔다. 파도가 센 편이라고 한다. 2층에 자리를 잡은 둘은 미리 멀미약을 먹고 단단히 채비를 한 상태다. 세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는 기대로 마음이 울렁인다. 이 울렁증은 멀미로 바뀌어 잠을 청해 보아도 잠잠해지지 않는다. 멀미 때문에 배 안의 에어컨온도를 낮게 해놓아 추위는 무릎담요로도 해결이 안 된다. 한겨울 추위 속에 평소보다 한 시간을 더 걸려 초죽음이 된 채 섬에 발을 들여 놓았다.

배에서 시달려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숙소에서 하루를 허비했다. 다음날, 길을 나서면서 도로가 엉망인 것을 알았다. 중앙선은 보이지 않고 육지의 포장도로는 고속도로다.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최대평지인 나리분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주인은 비빔밥에 나온 국이 무슨 국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시래깃국이라고 말하자 고개를 흔든다. 다들 시래기로 알더라고 하며 엉겅퀴라고 답해준다.

엉겅퀴는 들에서 보았던 곧추세운 꽃대에 가시를 잔뜩 단 보라색 꽃이다. 꽃이 예뻐서 꺾으려다가 가시 때문에 포기하던 도도한 꽃이다. 그 가시를 어쩌고 국을 끓이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의 의아함을 읽은 주인은 울릉도의 엉겅퀴는 가시가 없다고 한다. 가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미에도 없다는 것이다. 도저히 가시가 없는 장미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 섬에는 해충이 없다. 뱀도 들짐승도 없는 낙원이다. 육지처럼 고라니의 출현에, 멧돼지의 횡포로 농작물을 망칠 일이 없다. 가시란 상대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기에 해칠 해충이 없으니 자연적으로 퇴화하였다고 한다. 화려한 꽃일수록 억센 가시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남을 찌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생긴 무기인 셈이다.

꽃의 가시이야기를 들은 그이는 나를 빗댄다. 그이에게 나는 온몸에 가시가 달린 사람이라고 한다. 날카롭게 세우고 있다가 찔러댄다는 것이다. 예쁘지도 않은 사람이 왜 그리 가시가 많은지 모르겠다고 놀려댄다. 내 딴에는 부드러운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그이의 말은 충격이었다.

내 안에 가시가 그리 많은 줄 몰랐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생채기가 날 때마다 나를 방어하기 위해 하나씩 돋은 가시가 온몸으로 번진 건 아닐까. 내가 외로운 건 사람들이 찔릴까 봐 다가와 주지 않아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 가시로 누군가를 찌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울릉도 아낙이 되면 가시가 없어질까. 해안도로를 걸으면서 시 한 구절로 위로해본다.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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