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의 밥상
욕심의 밥상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7.08.2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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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우리 가족은 계란을 많이 먹는 편이다. 큰딸아이는 계란말이를, 둘째딸과 아들은 계란찜을 좋아한다. 그래서 식탁엔 언제나 계란 요리는 빠지지 않고 올라간다.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계란만큼은 무척 좋아해 종종 삶아 먹는다. 특히 다이어트를 할 때는 밥 대신 계란이 주식이 되곤 했다. 그런데 요즘 `살충제 계란'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한동안은 마트의 계란 진열장에서 계란이 종적을 감추기도 했다. 다행히 `살충제 계란' 검사를 통과한 계란들이 다시 마트 진열장에 채워지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AI 조류독감으로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던 계란 값이 `살충제 계란'논란 탓인지 한층 내려간 가격이 매겨져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계란을 구매하기를 꺼리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계란 진열대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판을 망설임 없이 들고 나왔다.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마당 한 켠에 닭들을 키우셨다. 튼튼하고 잘생긴 수탉과 엉덩이가 토실토실한 암탉들이었다. 그런데 몇 마리 되지 않아 알이 적었다. 아침이면 어머니는 가마솥에 밥이 한소끔 끓어오르면 종지보다는 조금 큰 그릇에 계란 물을 부어 올려놓곤 하셨다. 그렇게 만든 계란찜은 언제나 새벽 첫 기차를 타고 학교에 다니던 큰 오빠의 차지였다. 내가 계란을 먹으려면 알이 많아야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암탉을 더 늘리지 않는 이상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내가 생각해 낸 일이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장씨 할아버지네 양계장이 있었는데 학교가 파하면 양계장에서 알을 걷는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 집 손녀가 내 친구이기도 한 덕분이었다.

친구를 따라간 양계장은 큰 창고 같은 곳이었다. 닭들은 좁은 틀 속에 갇혀 머리만 내민 채 길게 늘어진 먹이통의 먹이를 연신 쪼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알들이 줄줄이 놓여 있었다. 어려서였을까. 그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알을 낳을 수 있을까. 창고 천정에 매달려 있던 수많은 전구도 보았다. 그 양계장은 언제나 24시간 불이 켜져 있어서 멀리서도 환하게 보이곤 했다. 그것이 닭들을 혹사하고 있다는 생각은 못했다. 그때 나는 닭똥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계란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친구를 따라 열심히 판에 알을 넣어 옮겼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끝나고 친구 할아버지는 내게 껍질이 온전치 못한 알들과 크기가 아주 작은 알들을 스무 개 남짓 주셨다. 담아 올 곳이 없었던 나는 입고 있던 치마에 받아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으시고는 다음날 오빠 밥상뿐 아니라 우리들의 밥상에도 계란찜을 놓으셨다. 그때 내 눈에는 다른 반찬은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고 계란찜만 커다랗게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엄마는 남은 계란은 오빠를 줘야 한다며 찬장 깊숙한 곳으로 숨겨 놓으셨다. 그래서일까. 세월이 흐르고 내 생일 때만 되면 엄마는 계란 한판씩을 잊지 않고 사들고 오셨다. 오빠만 가슴에 가득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남은 자식들도 가슴에 가득 채우고 다니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더 이상 엄마가 해 주시던 최고의 밥상이 되어 주었던 계란찜을 맛볼 수 없는 지금에서야 말이다.

팔만대장경에는 `욕심은 수많은 고통을 부르는 나팔이다.'라는 경구가 나온다. 가만 생각해 보면 `살충제 계란', `AI 조류독감'그 모든 것이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계란찜을 많이 먹고 싶은 아이의 욕심, 알을 많이 낳게 해서 돈을 벌고자 하는 어른들의 욕심. 그리고 소비자들은 조금이라도 싼값에 물건을 사고자 하는 욕심. 국민의 불안 심리를 빨리 줄이고자 하는 정부의 성급한 조치. 그 모든 것이 작게는 개인의 욕심에서 시작되지만 결국에는 우리 이 사회에 만연된 욕심을 반증한다. 비싸더라도, 적게 먹더라도, 힘들더라도 동물들과 인간들이 행복 할 수 있도록 욕심을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것이 이 사회와 자연과 지구를 지키는 일이 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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