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는 꽃
다시 피는 꽃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7.08.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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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불같은 여름에 목련화라니. 홀연히 찾아와 염천 여름을 즐기고 있다. 질서를 어기고 고고하게 피었다. 짠하고 어여뻐서 눈으로 즐기고 마음으로 보려는데 금세 꽃이 지고 있다. 붙잡아 두었다 보여주고 싶은 이 있는데 황망히 가버린 나의 젊은 날처럼, 다시 찾아온 나의 봄날이 가듯 바삐 떠난다. 다시 못 올 줄 알면서도 아쉬워 풍만한 잎사귀 속을 기웃거렸다. 그래도 터울을 두고 피어서 소소한 즐거움을 맛보았다

겨울이 미적댈 때 잎보다 먼저 찾아와 봄을 열고 황황히 사라진 꽃이 아니던가. 봄의 꽃으로 명명한 저 목련이 통념을 깨고 말았다. 초봄과 염천 여름의 성격은 아주 달라서 이상 기온이 빚어내는 혼란도 아니다.

사연이 있음 직하다. 초봄엔 마른 가지에 잎도 없이 홀로 피었기에 그때는 묘령의 아씨처럼 고와 보였다. 지금은 잎사귀에 둘러싸여 고귀하고 도도하며 보다 더 고운매로 피어올랐다. 봄에 핀 목련이 불꽃처럼 타오르다 가버린 청춘이라면, 염천 아래 목련은 산전수전 겪어내고 개짐마저 벗어버린, 농익은 가슴으로 피워 낸 꽃이다. 아쉬워라, 젊음은 무에 그리 조급해서 눈 깜빡할 사이에 떠나버렸을꼬.

염천 아래 핀 목련은 아내로, 어미로 치열하게 살아오다 다시 저의 이름을 찾은 빛나는 중년의 꽃이다. 문학 공간에 찾아 들어 귀를 기울이고 눈빛마저 빛나던 그녀들을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들은 시인으로, 수필가로, 소설가로 다시 찾은 저의 이름에다 다른 명패를 달고 환히 웃고 있었다. 유월 장미는 칠팔월을 넘어서 9월도 마다않고 핀다. 배롱나무는 백일동안 꽃이 핀다 하여 백일홍이며 여느 꽃들도 나름의 시간 속에서 머물다가 간다. 쇠털같이 많은 날 겨우 며칠이라니 쫓기듯 가는 길이 억울하기도 했을라나. 아니면 길이 어긋나 만날 수 없었던 꽃과 잎의 운명적 해후일까. 애잔하고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며칠 뒤에 만난 벗에게 물었다.

“목련이 피었어요. 어인 일일까요? “후훗- 당신과 닮았군요.”

중년의 열꽃이라는 뜻이다. 공감대를 형성하며 의미를 부여했다. 뭇 아내와 엄마들이 여자를 벗어버린 뒤 인생 2막에 다시 피워 낸 꽃이라고?. 어쩐지 세월에 얹혀 온 그 무엇이 묵직하게 꽃그늘에 숨어있었다. 영혼의 정염은 보이나 청춘의 열광은 아니 보였다. 그러니 연홍지탄도 억울함도 아니다. 퇴색한 꽃잎이 나무 아래 누웠다. 한 잎은 누운 이 곁에서 마지막 빛깔을 사르고 있다. 또 한 잎은 미련일까, 아직 초록 잎사귀 위에 머물러 있다. 내 눈에만 미련이요, 안타까움이다. 짧지만 굵게 절정으로 타오른 뒤에 회한도 미련도 없이 누웠다. 뜬금없이 시조 한 구절이 가슴을 데워온다.

청초 우거진 곳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은 어데 두고/ 백골만 묻혔난다.

황진이의 무덤 앞에서 읊었다는 임제의 시조를 나도 구성지게 읊어본다.

목련 꽃에서 나의 스무 살과 나의 중년과 다가올 노년과 그 이후까지도 보았다. 스무 살도 아름다웠고, 살아오며 흘렸던 눈물도 아름다웠다. 지금의 나도 아름답다.

목련이 지듯 나의 봄날이 가고 있다. 노을빛을 등지고 백발을 흩날리며 다시 찾아올 목련을 기다리며 늙어가련다. 그때는 어쩐지 설화가 만발한 날 꽃불로 찾아오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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