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경마장이 스포츠일까
화상 경마장이 스포츠일까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7.08.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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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앞으로 5년을 더, 아니 바뀌지 않는다면 평생을 천막에서 지내야 했을지도 모른다. 1314일, 무려 3년 7개월여 동안 서울 용산 화상경마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했던 주민들 얘기다.

평범한 학부모가, 선생님들이 노숙을 해야 했던 사연은 5년 전인 2013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마사회가 용산역 앞에 있던 기존의 화상경마장을 용산구 한강로 3가에 있는 지금의 자리로 확장 이전한다는 뉴스를 접하면서부터다.

학교 코앞에 완공을 앞두고 있던 지상 18층, 지하 7층짜리 초대형 건물이 바로 한국마사회 소유의 건물이었다. 건물을 짓는 데 들어간 돈은 무려 1200억 원이었다.

학부모들은 즉시 교사, 지역 주민들과 연대해 용산 화상경마장 추방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앞에 국내 최대 규모의 도박장이 들어선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대책위는 화상경마장이 학교 주변 교육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주민의견 수렴 절차가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폐쇄와 이전을 요구했다.

그러나 마사회는 학교보건법에서 정한 교육환경 보호구역의 범위가 200m 이내라는 점을 들어 주민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화상경마장의 위치는 학교 경계와 불과 215m 떨어져 있었다.

마사회가 화상경마장 개장을 강행하려 하자 대책위는 2014년 1월 22일 천막 노숙 농성에 들어갔다. 이후 대책위 쪽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국민권익위가 마사회에 용산 화상경마장 이전 계획을 철회하라고 권고했으며, 국무총리실도 주민들과의 협의를 주문했다. 서울시의회와 용산구의회도 반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마사회는 국민권익위도, 총리실의 권고도 무시하고 기습적으로 화상경마장의 운영을 시작했다. 국가 최고 권력자가 있는 곳, 청와대의 동의가 없이는 설명할 수 상황이었다. 2014년 5월의 일이다. 당시 현명관 한국마사회장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사태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급반전'하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대책위를 지원해 온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대선 공약으로 이미 학교 교육 환경보장을 위한 화상경마장 등 도박시설 진입 금지를 내걸었다.

지난해 12월 임명된 이양호 마사회장은 주저 없이 새 정부와 코드를 맞췄다. 한국마사회에서 27일 용산 화상경마장 폐쇄를 결정한 것이다. 5년이나 임기가 남은, 살아있는 권력과의 마찰은 그로서도, 마사회로서도 `언감생심'이었다.

한국마사회는 지난해 전국 70개 경마, 경륜, 경정 장외발매소에서 7조2000여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여기에서 배팅 수익금 73%, 제세금 16%, 경상비 등을 제외하면 매년 2000여억원의 수익금을 남긴다. 문제는 사행 심리를 부추겨 돈을 벌고 있다는 점이다. 총 매출액 중 장외발매소 매출 비중이 70% 이상이라는 게 이를 증명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용산 경마장 폐쇄를 계기로 사행 산업 감독·관리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도심 건물 속 장외발매소에서 CCTV로 즐기는 경마가 스포츠인지 도박인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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