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붙은 파리 효과
벽에 붙은 파리 효과
  •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서원초 교감)
  • 승인 2017.08.2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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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서원초 교감)

# 실연당한 남자

여자 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차인 그는 너무나 당황스러워 먹먹한 가슴으로 휘청휘청 집으로 돌아왔다. 홀로 적적한 자취방에 돌아와 보니 억울하고 서럽고 또 그동안 만나 왔던 추억이 떠올라 방에서 한참을 울었다. 과거 자신의 실수를 되짚어 보기도 하고 그녀의 자신에 대한 행동 등을 샅샅이 뒤져 보기도 한다. 욕도 하고 가슴을 쥐어짜기도 하고 벽에다 주먹을 날리기도 한다. 일주일 째 밖에도 안 나가고 식음을 전폐했다.

어느 날 우연히 고개를 드니 벽에 웬 파리 한 마리가 앉아있다. 그 파리는 그가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계속 그 자리에 붙어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순간 기분이 묘해지면서 `가만, 저 파리에게 내 슬픔과 아픔은 아무 일도 아닌 거겠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파리에게는 그 사람의 슬픔이나 고통이 자신의 것이 아니므로 과히 대수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 파리는 그와 같은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지켜봐 왔다.



# 벽에 붙은 파리(fly on the wall)

정신의학자 정성훈은 어떤 일에 실패하거나 좌절했을 때 제3자의 입장으로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긍정적인 심리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현상을 `벽에 붙은 파리 효과(fly on the wall effect)'라고 부른다.

심리학자 에이덕과 크로스(O. Ayduk & E. Kross)는 과거 자신의 실패를 바라보는 데는 2가지 시선(1인칭, 3인칭 시점)이 있다고 했다. 이들 심리학자는 피험자들에게 두 가지 시각에서 자신의 과거 실패를 재경험하게 한 후 이들이 어떤 감정적 반응을 나타내는지 조사를 하였다. 1인칭의 시점에서 과거의 실패를 재경험한 피험자들은 혈압, 심박수가 높아지며 과거와 동일한 불쾌감각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3인칭 시점에서 과거의 실패를 바라본 피험자들은 혈압과 심박수가 정상적이었으며 과거 실패 경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는 긍정적인 보고를 했다.



# 외상 후 스트레스 극복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사업실패, 경쟁에서의 탈락 등의 경험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심한 심적 충격은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도 정서적 괴로움과 불편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세계에 갇힐 수 있다. 즉, 과거의 내 모습인 `과거 자아'에 사로잡혀 현실에서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삶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심리적 외상과 상흔을 극복하기 위해선 자신을 관찰 대상으로 삼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공감하며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겠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객관화하는 훈련을 의식적으로 한다면 상처를 극복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문득 내가 세상에서 제일 초라하고 불쌍하다고 느껴지거나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힘조차 느껴지지 않을 때 벽에 붙은 파리가 되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일에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했는지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8월 한 달, 필자 주변에 아픔과 슬픔을 겪는 지인들이 유독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작은 슬픔부터 평생을 가슴에 품고 가야 할 아픔과 충격을 받은 사람들. 그들에게 깊은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하지만 극복은 오로지 그들 자신의 몫, 그들에게 `벽에 붙은 파리 효과'가 조금의 효과라도 발휘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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