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의 종소리
석양의 종소리
  • 박재명<충북도 동물보호팀장>
  • 승인 2017.08.2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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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박재명<충북도 동물보호팀장>

여름이 익어 갈수록 하늘이 맑고 푸르러 간다. 빌딩 숲의 도시를 둥그렇게 두른 산들의 곡선을 경계로 푸른 하늘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여름이다. 석양이 넘어가는 오후 여섯 시 반, 하루를 태운 붉은 태양이 동림산 너머로 고즈넉하게 넘어간다. 석양에 반사된 구름이 도시의 하늘을 은은하게 채색한다. 도심에서 바라보는 석양이 언제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그간 하루하루를 빡빡하게 살면서 하늘 한 번 여유롭게 쳐다볼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럴 즈음에 우암산 기슭에서 둥~하는 범종 소리가 났다. 그 긴 여운의 끝이 사라질 즈음, 이번에는 기다리기라도 하듯 시내 쪽에서도 둥~하는 소리가 났다. 석양을 바라보며 산과 시내가 서로 기다리듯 바라보듯 들려주는 종소리에 한참 귀 기울였다.

도심에서 듣는 사찰의 종소리가 새삼 은은하다. 종소리가 울리는 그 짧은 순간에 시내의 차 경적소리가 잠시 멎은 듯 평온함이 느껴졌다. 그동안 세속의 사람들 빈틈으로 매일 울려 퍼졌을 텐데 오늘에야 비로소 처음 들었다. 나만 그랬을까? 아마 다른 사람들도 도시의 소음에 묻혀 그랬을 성싶다.

산에서 들려오는 저 종소리,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을까? 복잡한 사연과 의미가 많겠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종이란 어떤 시각이나 신호를 알리거나 기쁨, 경고, 슬픔을 알리는 것이 본래의 역할일 게다. 사찰에서 울리는 종소리도 이 범주 안에 있었을 것이고 더불어 평화와 사랑이 넘쳐나길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에 고층 아파트에 살면 누릴 수 있는 전망 좋은 베란다의 꿈을 기대하며 이사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어리석은 허상이었다. 큰 도로변에 살고 있다 보니 소리에 무척 예민해졌다. 특히 여름에는 강렬한 소음으로 창을 열 수도, 안 열 수도 없는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창문을 열면 자동차 소리가 하루 24시간 쉼 없이 빼곡히 지나다닌다. 새벽잠을 설치게 하는 청소차는 그나마 좀 더 부지런해야 한다는 반성을 하게 해 준다. 응급차, 구급차, 견인차들이 지나갈 때는 나의 숨도 넘어갈 듯 호흡이 거칠어진다. 그러나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소음기가 제거된 승용차나 이륜차다. 귀를 뚫을 듯 굉음을 내며 밤낮을 질주한다. 도로를 반으로 갈라놓을 듯이 달릴 때면 마음의 평화는커녕 분노마저 치밀어 오를 지경이다.

그런데 고요히 해질 무렵에 울려 퍼지는 저 종소리는 나의 작은 가슴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보잘 것 없이 작은 소리지만 저 소리가 도시의 소음을 잠재울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좋은 소리는 귀로 들어왔다가 마음을 울렸다가 적시고 지나가는가 보다.

도시에 살면서 잊어버린 소리를 듣고 싶다. 봄이면 뻐꾸기와 꿩이 울고, 여름이면 매미와 소쩍새 소리. 가을이 오고 겨울이 되면 우리가 잊어버린 어떤 소리가 찾아오는 도시가 좋다. 도시에 나무를 심고, 동산을 살리고, 실개천을 살리면 자연의 맑은소리가 더 많이 들리지 않을까? 아파트 짓고, 공장 짓고, 상가를 지을 때 자연과 문화공간을 대폭 더 늘릴 수는 없을까?

나무 많은 숲에서 새소리 나고, 담 너머 공연장에 합창소리 들리고, 도서관에는 책장 넘기는 소리, 공원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상상해 본다. 경제 중심의 도시가 이런 것들을 위해 훨씬 더 많이 양보해 주는 도시를 꿈꾸어 본다. 불가능하기만 한 걸까? 석양의 종소리를 들으며 생각나는 단 한 가지의 아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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