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꽃 날리는 날에
탱자꽃 날리는 날에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7.08.2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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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호젓한 시골마을로 휴가를 갔다. 사람의 향기가 풍길 것 같은 가옥은 여느 집과는 사뭇 다른 형태다. 비록 양반가옥은 아니지만 탱자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사랑채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와 별채, 옆으로 헛간과 곳간이 있는 전형적인 양반가의 가옥을 연상케 했다. 사랑채의 좁은 툇마루와 작은 마당에선 주인장의 헛기침소리가 들린 듯하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비집고 자란 무성한 잡초 속에 주인 잃은 세간들이 울타리 구석진 곳에 나뒹굴고 있다.

삶의 애환이 녹아내린 헛간.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에 방아다리가 썩고 또 썩어 저리 문드러졌을까. 방아확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공이를 들어 올릴 때마다 새가 모이를 낚아채듯 날렵하게 곡식을 뒤집는다. 흙바닥을 얼마나 많이 손으로 쓸어내리고 곡식을 뒤집었는지 분진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번들번들 고부의 노고가 고스란히 얼비추고 있다.

이 댁은 층층시하 대가족으로 살았다. 시어른은 행랑채에, 며느리 손주들은 안채에서 북적북적 식구를 이루며 세대 간의 정을 느끼며 살았다. 시대 흐름에 장성한 자식들은 도심으로 떠나고 시어른과 아들 내외만 탱자나무와 터줏대감 되어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유독 탱자나무로 울울창창한 사랑채울타리는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시아버지 때문에 시어머니가 심었다는 믿지 못할 소리도 있다. 젊은 날, 시아버지는 한량이었다. 시고부는 등골이 빠져나가도록 오체투지가 되어 전답을 누비고 다녔다.

한량생활을 하던 시아버지는 어느 날부터인가 조락한 탱자꽃처럼 움직임이 둔하고 등이 점점 굽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가을걷이를 하던 중 시어머니는 울퉁불퉁 못난 탱자처럼 화(火)로 가득 채워져 쭈글쭈글 거리는 가슴을 꼭꼭 간직한 채 암울한 속세를 떠나 영혼이 되셨다. 그렇게 수십 년간 제 혼자 피고 지기를 반복하면서 눈물겨운 세월을 동고동락 한 탱자나무가시가 시고부를 얼마나 아프게 찔러댔을까, 아니 얼마나 위로를 했을까.

질풍노도 같은 세월, 유유자적하던 홀시아버지는 등 굽은 탕자로 돌아왔음에도 여전히 외향은 선비다. 등등거리에 등토시로 탱자꽃처럼 하얀 모시옷을 고수하여 노구의 며느리를 시집살이시켰으니 그들의 고부관계는 탱자나무와 흡사하다.

탱자나무를 보면 줄기와 가지에 커다랗고 뾰족한 가시들이 달렸음은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는 품격과 자태를 지닌 모습이요, 잎은 어긋나며 3장의 잔잎으로 이루어진 겹잎은 식솔들의 동태다. 잔잎의 가장자리에는 조그만 톱니들이 있으며 잎자루 양쪽으로 날개가 달렸음은 고단한 삶에 벗어나고픈 며느리의 염원인 것 같아 아릿하다.

시어머니의 젊은 날 아픔을 감추려는 듯 가시를 세우고 털옷을 입은 파란 탱자가 여전히 울타리를 대신하고 있다. 노쇠한 며느리처럼 점점 누렇게 익어 가면 며느리의 인품만큼 고고한 향이 흩날릴 텐데. 변수가 생겼다. 빈집이 늘어나면서 폐가로 전락하고 있는 이곳을 정책상 허물어 텃밭으로 쓰일 예정이란다.

그날, 느티나무가 있는 공지에 모여 탱자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해가 지도록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탱자꽃이 흩날리고 간 자리 그 끝자락에 또 다른 향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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