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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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7.08.1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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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박윤미

여름밤, 베란다 창문 쪽에 머리를 두고 한 줄기 바람이 들어오길 기대하며 뒤척이다 어느새 잠이 들긴 했다. 그런데 연일 이어지는 열대야로 잠을 설치는 게 사람만은 아니었다.

고막에 들이대고 울리는 경적에 놀라 반사하듯 휘청휘청 일어났다. 소릿결이 낚싯줄인 양 내 귀를 잡아당긴다. 방충망에 붙은 시커먼 것이 딱 보인다. 아직도 어스름한 푸른 새벽빛 속에서 움찔거리는 꽁댕이의 리듬이 선명히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도 녀석은 무아지경이라 아무 눈치도 못 챈다. 조그만 몸에서 어찌 저렇게 대단한 소리가 나는지 경이롭단 생각을 하면서도 어느새 내 엄지와 검지는 팽팽하게 맞물려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녀석을 노린다. 꿀밤을 한 대 제대로 먹였더니 사이렌이 지나듯 순식간에 멀어져 버렸다.

이제 고요하다. 다시 자리에 누워 좀 더 자려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잠으로 들어가려 하면 오히려 잠에서 밀려난다. 여름을 여름답게 하는 소리, 뜨거운 열기를 가로질러 초록의 나뭇잎 사이사이로 울려 짝을 부르는 적극적인 사랑의 노래, 손끝에 남은 감각이 도드라지게 살아나며, 무언가 쓴 것이 가슴에 알싸하게 퍼진다.

녀석은 나무 위가 고향이다. 알에서 부화하여 나무 아래 암흑의 세계로 들어갔다. 어두운 그곳에서 단단한 껍질과 날개가 생기길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시간 묵묵히 수도하였다. 언제가 될지 어떤 모습으로 될지 분명 몰랐을 것이다. 그 막막함 때문에 정말 어두운 시간을 그저 흘려보냈을 것이다.

지상의 세계에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는지는 알고 있었을까? 눈을 떠도 어둡고 감아도 어두운 세계에서 세포에 새겨진 감각만으로 드디어 때가 됨을 알았을 것이다. 나무뿌리를 길잡이 삼아 흙을 헤치며 땅 위로 올라와서, 알에서 깨어난 최초의 탄생 지점으로 서서히 나무를 기어올랐다. 이제 살아서 땅을 밟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아는 듯이 위로 멀리 높이. 온몸이 굳어와 더 오르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무껍질을 꽉 부여잡고 마지막 힘을 모아 등껍질을 쪼갰다.

갈라진 등껍질 사이로 여린 살을 디밀어 나오며, 밤새 자신을 낳는 진통을 모질게 이겨내고 드디어 단단한 날개와 커다란 울림통을 가진 성충으로 스스로 탄생하였다. 여름 한 철의 치열한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긴 인고의 시간 후 갖게 된 시한부의 삶,

요즘의 매미들은 과거의 어느 시대에서보다도 더 치열하게 여름을 살아내는 듯하다. 밤에도 훤한 도시의 조명에서 매미는 잠들지 못한다. 도시의 열기에 변온동물인 매미의 몸은 밤에도 식지 않고 여전히 뜨거워 쉼 없이 계속 운다. 콘크리트 건물에 공명하여 커진 매미 소리에 놀라 서로 더욱더 크게 우는 건 아닌지, 뜨거워진 지구의 뜨거워진 이 여름에 사람이나 매미나 모두 잠을 설친다.

이제 아름드리나무 그늘을 함께 나누며 매미가 들려주는 가락에 부채를 흔들던 노인들의 느긋한 휴식은 볼 수 없다. 한번 잡아보고 싶어 숨은 그림 찾듯 나무를 올려다보는 기대에 찬 아이들의 눈, 만지면 진동하는 느낌에 내지르는 짜릿한 환호성, 날개의 떨림을 숨죽여 기다리던 어린아이들의 순진한 호기심은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 오래전도 아닌데 되돌아갈 수는 없는 과거이다.

창가에 밝아오는 빛처럼 매미들의 떼창이 공간 가득 더 크게 퍼진다. 뜨겁고 치열한 여름 한 날이 또 시작된다. 꿀밤의 멍에 아파도 저 합창에 한몫하고 있을 녀석, 살아있을 거라고 애써 나를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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