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중의 잡초왕 바랭이
잡초 중의 잡초왕 바랭이
  • 우래제 교사 (청주 원봉중)
  • 승인 2017.08.16 1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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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 우래제 교사 (청주 원봉중)

더덕밭 만들고 씨앗 붙은 피복이 남아 호두나무 밭 사이에 깔았다. 피복을 주문한 지 일주일 넘겨 늦게 깐 탓인지 심한 가뭄 탓인지 제대로 발아되지 않고 듬성듬성 가뭄에 콩 나듯 더덕이 올라왔다. 어린 더덕이 손가락 한마디쯤 되었을 때 제초작업을 하고 서너 달 방치해 두었다.

넓은 더덕 밭 제초작업에 고라니 방지망까지 치고 나서 호두나무 밭 사이의 더덕 밭을 가보았다. 풀이 사람 키보다 더 크다. 어쩔까? 넓은 더덕 밭의 잡초도 감당하기 어려운 판이고 어차피 호두나무가 주 작물이기에 여차하면 예초기로 풀을 깎을 심산이었지만 잡초들 사이의 더덕이 더러 눈에 보인다. 농부의 욕심이 발동해서일까? 일단 제초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연일 폭염주의보·경보가 내려졌지만 한낮을 피하여 며칠간 그야말로 풀과의 전쟁을 벌였다.

나물로 먹기도 하는 참비름, 청려장을 만들만큼 키가 큰 명아주, 논에 많이 사는 방동사니, 오곡 중의 하나이지만 지금은 천대받는 피, 놀라운 생명력의 쇠비름, 그리고 바랭이….

모두다 농부들에게는 귀찮은 존재이지만 제초작업을 하면서 바랭이만 보면 짜증이 난다. 바로 이놈이 잡초 중의 잡초이기 때문이다. 왜 바랭이가 잡초의 왕인지 알아보자.

바랭이는 전 세계 온대·열대지방에 자라는 벼과의 식물이다. 우리나라에는 바랭이 속에 속하는 바랭이, 민바랭이, 좀바랭이 3종이 서식하며 그중 바랭이가 가장 흔하다.

바랭이가 잡초의 왕인 첫째 이유는 수분 스트레스를 잘 이겨내는 종이기 때문이다. 쇠비름은 다육질의 줄기에 물을 저장하여 건조에 강하지만, 바랭이는 그런 조직 없이도 보통 식물들이 죽을 정도로 직사광선에 노출되어도 잘 산다.

둘째 C4 식물로 다른 잡초들보다 이산화탄소를 효율적으로 고정하기에 다른 잡초를 제압(?)하고 번성할 수 있다. 장마가 끝나 뙤약볕이 내리쬐는 환경은 바랭이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셋째 어려서는 위장술(?)이 뛰어나 수수나, 조 같은 작물과 아주 비슷하다. 자세히 보아야만 구별할 지경이다. 넷째 바랭이는 평지를 퍼져 나가며 번성하는 식물인데 대부분의 잡초가 그렇듯 경쟁이 심하면 곧게 자라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디마다 뿌리를 내린다는 점이다. 쇠비름은 끊어진 줄기에서만 뿌리가 나오는데 바랭이는 모든 마디마다 뿌리를 내려 제초제를 치면 제초제가 묻은 줄기까지만 죽고 조금이라도 제초제가 묻지 않은 곳은 여지없이 살아남는다. 또 줄기가 벋으면서 갈라지는데 작은 맷방석만큼 퍼진다. 긴 것은 반경 1m까지 퍼진다. 사방으로 가지를 치면서 마디마다 뿌리를 내린 이놈 한 포기를 뽑는다고 생각해보자. 천하장사도 어려울 일이다. 방법은 한줄기씩 뽑는 수밖에. 그러다 줄기의 한 마디라도 남으면 그놈이 다시 살아 어엿한 한 포기가 된다.

잡초들이 내게 여러 가지를 가르친다. 모든 일에 때가 있는 법이다. 가늘게 한 줄기 올라왔을 때 뽑았다면 지금의 품 백분의 일, 천분의 일도 힘이 들지 않았을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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