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을 위하여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하여
  • 김효진<청주시 하수처리과 주무관>
  • 승인 2017.08.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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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 김효진

“또 놀러오세요.”

직장인 아빠가 아침에 출근한다. 엄마 품에 안긴 딸아이가 이같이 인사를 한다. 그날 이 아빠는 `야근을 하지 않겠다'라는 굳은 의지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한다. 그 결과 집에 일찍 들어가 딸과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딸은 즐거웠는지 “내일 또 놀러 와”라고 인사를 한다.

어느 제약회사의 광고 내용이다. 조금은 과장됐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마 공감하는 분들도 많을 거라 생각된다. 당장 필자의 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니 말이다.

광고 속 아빠는 왜 매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걸까? 회사에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승진이나 평가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직장인 엄마, 아빠의 현실이다.

지난 정부는 일하는 여성이 늘고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면서 일·가정 양립을 핵심개혁과제로 꼽고 수많은 정책을 쏟아냈다. `일·가정의 양립(Work-Family Balance)'이란 근로자가 일과 가정생활을 모두 잘 해내고 있다고 느끼는 상태이거나 직장과 가정생활을 조화롭게 해 나갈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정부에서 쏟아내는 일·가정양립 정책들만 본다면 다른 선진국에 비춰봤을 때 그렇게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직장인 엄마, 아빠들의 일·가정양립제도 활용도는 시원찮은 게 현실이다. 글로벌 컨설팅그룹인 맥킨지가 2016년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조직 건강도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 기업의 조직 건강이 `함량 미달'로 나타났으며, 그 원인 1순위로 `야근'이 지적됐다.

같은 해 리서치앤리서치에서도 일·가정양립정책 국민체감도 조사결과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로 직장 내 분위기(68.8%), 경제적 부담(26.6%), 지속적인 자기 경력 계발(4.2%), 기타(0.6%) 등을 꼽았다. 결국 장시간 근로 및 그러한 직장 내 분위기가 일·가정 양립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말이다.

한국 근로자의 근로 시간은 1989년 법정 노동시간의 단축과 2004년 주 40시간제 도입 등에 힘입어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최장 시간 국가군에 속한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2015년 기준 2113시간으로 OECD평균(1766시간) 보다 347시간 더 긴 것이 현실이다.

이를 반영하듯 현 정부에서 노동자들의 과도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윤택한 삶을 위해 제시한 이른바 `칼퇴근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통과된다 하더라도 제도를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조직문화가 걸림돌이 될 것이다.

다양한 일·가정양립 제도의 도입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에 그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문화로 정착되려면, 과감한 직장문화 개선 등 가족친화적인 직장문화 조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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