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아포리즘
하루키 아포리즘
  • 배경은<청주노동인권센터>
  • 승인 2017.08.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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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배경은<청주노동인권센터>

지인의 소개로 하루키를 읽고 있다. 내 지인은 속된 말로 `하루키 빠'이다. 첫 소설부터 안 읽은 소설과 에세이가 없고 이번 오랜만에 나오는 신작 소설은 일찌감치 주문을 마친 상태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오래전에 하루키와 조우했던 시간이 있다. 뭔지 모르게 유약해 보이는 문체와 밍밍하고도 지루한 전개에 그닥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짧은 수필 몇 조각 베어 물고 말았던 적이 있다.

5년이 지난 뒤에 우연히 그의 책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독서모임을 하며 나의 독서 편식을 깨닫고 고치게 되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소개해 준 책은 무조건 읽어보기였다. 마침, 이렇게 좋은 적용의 책읽기를 할 줄이야!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뭔가 지루한 잠언 정도가 비칠 뿐이었다. 기대감 없이 읽기 시작하다가 그만 나는 슬픔과 돌아봄, 부끄러움 등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다.

단출하고 평범한 그의 시간표 앞에 도저히 예술가에게서 느끼는 병리적인 것들이 전혀 맡아지지 않는다. 그는 5시 이전에 일어나서 밤 10시면 잠이 드는 샐러리맨 같은 생체리듬을 갖고 있다. 또 그는 마라톤을 한다. 매일 10킬로씩 음악을 들으며(그의 소설엔 재즈와 클래식 음악이 많이 등장한다) 육체의 한계를, 그 지경에 이르러 고통 하는 세포들과의 교감을 글로 담아내는 재주 좋은 작가였다.

이제 그럼 내 이야기를 해볼까. 얼마 전, 올해 초 계획을 세워 두었던 다이어리를 잃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다. 자책과 함께 새 다이어리, 날짜와 요일을 직접 기입하는 형식이라 연도에 제약을 받지 않는 것으로 다시 장만했다. 매일 무언가를 꾸준하게 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과 나에게도 이런 습관이 있나 생각해 본다. 본능적이고 말초적인 생리적 행위를 빼고 내가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것은 커피 마시는 일 그거 하나였다. 그리고 주 6일은 책을 읽고 있다. 참, 요즘엔 휴대폰 중독 환자처럼 폰을 보다가 잠이 들고 일어나자마자 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점점 격해지고 있다. 물리적인 시간에 쫓겨 늘 자투리 시간을 아껴보자고 외치고 있지만 정작 내게 성실해지는 시간은 없다는 것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이 머리가 띵 하다.

있어 보이도록? 책 많이? 읽고 고상한? 철학을 공부하는 활동가라고 생각했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있어 보이는 허영의 독서가 자신의 빈자리를 채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지만)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 같은 하루키의 책은 나와 직면하는 괴로운 작업이 되었고 불안한 자신감과 교만의 참담한 민낯으로 마주 보고야 말았다.

다시 나를 본다. 정신의 나사못을 하나하나 견고하게 조이고 싶다. 올해의 계획은 기억조차 아득하지만 아직 내게는 약 4개월 반의 시간이 남아있다. 얼마나 다행인가, 나를 바꿀 수 있는 시간은 나름 충분하다. 어떤 이는 너무 치열하고 긴장감으로 사는 거 아니냐고, 비참한 비교의식이라고 하겠지만 느려진 태엽 같은 정신으로 살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물이 곳곳에 있다. 같은 양의 하루가 다른 질량의 무게로 다가온다. 앞으로 나이 들어감의 시간은 더욱 그러하리라. 무언가 다시 시작하려는 성실을 다짐한 이들에게 응원을 올려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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