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과 포퓰리즘의 징후
불통과 포퓰리즘의 징후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08.13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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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장관도 아닌 차관급 인사에서 이렇게 격렬한 풍파가 일어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청와대가 임명했던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얘기다. 집권당에 우호적이던 정의당을 포함한 야 4당과 전국공공연구노조가 반대에 나선 지 나흘 만에 당사자가 사퇴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 됐다. 그러나 뒷끝이 개운찮은 것은 그 과정에서 문재인 정권이 그토록 경원시 해온 `불통'의 조짐이 읽혀졌기 때문이다.

박 전 본부장은 사기극으로 들통이 나 국제적 망신까지 초래한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에서 사실상 공동 주역을 맡았던 인물이다. 당시 청와대 과기보좌관을 맡아 200억원 이상을 황 박사에게 집중 지원함으로써 실패한 프로젝트에 막대한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황 박사의 조작 논문에 기여하지 않고도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려 도덕성에서도 흠결을 남겼다. 지난 10년간 사과도 반성도 없다가 이번에 임명장을 받고나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다.

그의 기용이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것은 뻔한 이치였다. 참여정부에서 시작된 현 정권과의 인연 빼놓고는 그가 발탁된 이유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임명을 강행했고, 과보다 공이 크다는 빈약한 논리로 반대 여론에 대응했다. 서울대에 이어 고려대 교수까지 반대 성명에 가세하는 등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장이 확대되자 자진사퇴 방식으로 고집을 꺽었다. 여론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여론에 굴복한 모양새였다.

불통의 징조 뿐 아니라 최근 청와대가 내놓은 정책들에서는 `포퓰리즘'의 냄새도 풍긴다.

건강보험 보장률을 대폭 높인 `건강보험 보장 강화정책'은 오랜 숙원을 해결했다는 점에서 박수받을 만 하다. 저소득층 의료비 부담을 46%까지 줄여 병원비 때문에 가계가 파탄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대목에서는 정책의 목표가 선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복지 확충에서 요구되는 근본적 문제인 예산 조달에 대한 입장은 모호하기만 하다. 대통령 임기인 2022년까지 30조6000억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건강보험이 적립한 21조원 중 절반을 투입하고 나머지 20조원은 국가 재정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이 청와대 방침이다. 그러나 그 20조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구체적인 해법이 없다. 

정부가 건보 재정이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서고 6년 후인 2023년이면 모아 둔 적립금마저 모두 바닥난다고 발표한 것이 불과 5개월 전 일이다. 기재부 예측 대로라면 이 적립금도 소진 시한이 지금부터 7년에 불과하다. 청와대는 마치 여유 재원을 사용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적립금 전용은 결국 건보 적자를 가속화 해 다른 재원을 확보해 투입해야 하는 시점만 앞당길 뿐이다.

증세 의지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논란 속에 추진 중인 이른바 `핀셋 증세'도 세입 증가액은 연간 4조원 안팎 정도로 추산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청와대는 건보료 인상을 그간의 평균치인 3.2%선으로 유지하겠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이같은 수준의 인상이 거듭돼왔지만 보험 보장률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지금까지의 인상률로는 현 보장률도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올려놓고 건보료 인상은 종전대로 가겠다고 하니 신뢰가 가지않는 것이다.

복지는 무엇보다 연속성이 담보돼야 한다. 예산의 안정적 조달이 관건이다. 그렇잖아도 정부가 내놓는 정책마다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고, 예산조달 문제를 놓고 여야가 충돌하는 상황이다. 그제 발표된 기초생할보장제 보완책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 임기 중에 기초보장제 사각지대에 놓인 비수급 빈곤층 93만명을 20만명으로 줄이겠다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 9조5000억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비롯한 복지확대 정책이 앞으로도 계속 추진될 전망이지만 예산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설득력있는 답이 나오지 않고있다.  청와대는 도깨비방망이를 보여주던가, 아니면 상당한 폭의 건보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털어놔야 한다. 혜택에는 부담이 따른다는 상식적 논리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뒷감당에 대한 고민과 숙고없이 낙관과 장담으로 정책을 포장하는 것에서 포퓰리즘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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