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 그 후
물난리 그 후
  • 김선영<소설가>
  • 승인 2017.08.13 2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 김선영<소설가>

안방까지 침수된 뒤 물이 빠진 집안은 참담했다. 시커먼 뻘과 부유물들이 세간 살이 곳곳에 들러붙어 물에 잠긴 것은 다시 쓸 수 없었다. 구 십 노구의 몸으로 처참한 집안을 둘러보던 시어른들은 망연자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호스로 물을 끌어다 집안을 쓸어내기 시작했다. 침수된 장판과 벽지는 다시 쓸 수 없었고 거실 한 가운데가 푹 꺼져 들어가, 뜯어내고 공사를 해야 할 판이었다. 역류한 하수에 잠긴 옷가지와 이불도 죄 버려야 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망연한 건 소식 듣고 달려온 자식들도 마찬가지였다.

물에 젖은 가구는 더없이 무거워서 손을 대도 꼼짝하지 않았다. 수해가 나고 이틀 뒤 군인들 예닐곱 명이 왔다. 장맛비는 간간이 폭우로 변하여 쏟아지고 습도가 높아 숨만 쉬어도 땀방울이 솟는 날이었다. 앳된 얼굴의 군인들이 방마다 가구를 들어 장판을 뜯어주었다. 물에 잠겨 쓸 수 없거니와 무거워서 들 수 없는 세간을 집 밖으로 내주기도 했다. 군인들이 흘리는 땀방울에 더없이 미안하기도 했다. 덕분에 복구를 위한 집수리가 한결 쉬워질 것도 같았다.

집기를 그대로 두고 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남은 세간을 일일이 정리해야 그나마 일이 쉬워질 것 같았다. 눈앞이 아득했다. 들이닥친 물에 갑작스럽게 짐을 빼고 어떤 것은 버리고 어떤 것은 물에 젖어도 버리지 못한 것 등, 짐을 싸놓은 모습이 계통도 정리도 안 된 그야말로 피난보따리, 보따리였다. 가구에 남아 있는 집기들도 죄 빼내야 그나마 이동이 용이하기 때문에 많은 손길이 필요했다. 서울서 직장 다니는 딸이 휴가를 내 내려오고 무거운 가구를 이리저리 옮겨줄 아들도 알바를 쉬고 할아버지 집으로 달려왔다.

주방은 하수 냄새로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침수 피해가 컸다. 씽크대는 물론 식탁까지 연일 쏟아지는 비에 곰팡이가 시뻘겋게 올라왔다. 주방의 세간도 죄 빼내야 했다.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 먼지가 세간 살이 위에 나 앉았다. 보름 정도 집수리를 마치고 다시 피난보퉁이 같은 세간을 풀어 정리를 해야 했다. 그 또한 눈앞이 캄캄했다. 소쿠리마다 담겨 있는 그릇들은 죄 다시 씻어야 하고 주방의 그 많던 세간 위에도 공사 먼지가 뽀얗다. 며칠을 해도 모자랄 것 같았다.

그때 어디선가 천사 일곱 분이 오셨다. 집앞 성당(영운동)의 레지오단원들이 교우의 침수 피해를 듣고 오신 거다. 살림 9단, 아니 18단도 넘는 고수들이 오셨다. 일사천리로 일을 분담하여 세간을 씻고 닦았다. 척척 우렁각시 같은 일곱 분이 손길을 보태자 반나절 만에 세간이 자리를 잡아갔다. 짐을 풀고 그릇을 닦고 마른 행주질을 하면서도 연신 침수 피해를 입은 이웃들 걱정이었다.

집수리를 마치고 피난시켰던 시어른들을 다시 모셨다. 아픈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멀리서나마 수해 소식을 물어주던 친구들이 생각나고 옆에서 걱정해주며 마음 보태주던 친구들 얼굴도 떠올랐다. 갑자기 들이닥친 물에 거동이 불편했던 시아버지를 업고 나온 이웃집 어른도 찾아봬야겠다. 봉사자들 주겠다고 음료수와 빵을 사 나르던 친구의 얼굴도 떠오른다. 갑작스러운 일정임에도 수해 사정을 얘기하자 열일 제쳐두고 달려와 준 인부들도 감사하다. 무엇보다 어려울 때 한 마음이 되어 토닥여주던 가족들이 새삼 끈끈했다.

이 번 일을 겪으며 생각보다 내상이 심했다. 침수는 자연재해이기도 하지만 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인재이기도 하다. 그런 데도 재산상 피해는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물난리로 인한 정신적 피해도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세금을 열심히 내고 있는 이 나라의 한 사람으로서 납득이 가지 않는 재난관리 시스템이다. 복구 후의 대책도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기존의 집을 부수고 하천보다 높게 집을 짓는 것이 대책일 수밖에 없다. 이게 말이 되는가? 복구할 힘조차 없는 사람들은 그저 분노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수해라는 것이 뉴스에서만 접하던 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당해보니 그간 수해를 겪었던 분들이 얼마나 참담했을지 헤아려졌다. 그분들께 미안했다. 그분들도 이런 재난관리 시스템에 분노를 느꼈으리라. 다시 한 번 나라가, 정부가 돌아볼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