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와 손잡기
잠자리와 손잡기
  •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 해설가>
  • 승인 2017.08.10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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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안상숲

더위가 점점 더해질수록 하늘은 잠자리로 가득합니다. 하늘은 그야말로 하늘 반 잠자리 반입니다. 들에서 태어난 잠자리들도 숲 속으로 날아오지요.

네 날개 끝에 까만 깃을 두른 깃동잠자리와 작은 좀잠자리들은 하늘을 마음껏 날다가 어디든 잘 앉아요. 나뭇가지든 풀잎 끝이든 머리와 어깨 위에도 사뿐 날아와 앉아요. 장수잠자리나 측범잠자리, 왕잠자리 같은 다른 큰 잠자리들과는 달리 경계심도 크지 않아 여름 한때 그들과 손잡고 노는 일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어요.

잠자리의 커다랗고 둥그런 겹눈은 종에 따라 1만~2만 8천여 개의 낱눈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육각의 벌집처럼 생긴 각각의 낱눈은 사람의 눈처럼 각막과 망막과 유리체를 가지고 있지요. 시력은 낮지만 각각의 낱눈이 따로따로 빛을 감지할 수 있어서 움직이는 것을 잘 포착한답니다.

이 겹눈으로 잠자리는 앞뒤 좌우 제 몸 20미터 뒤의 움직임까지 볼 수 있지요. 그러니 잠자리를 잡겠다고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가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잠자리는 뇌의 80퍼센트를 겹눈이 포착해낸 사물을 감지하는 데 사용한다고 하니 잠자리에게 이 눈이 얼마나 소중한지 짐작할 수 있지요.

이 멋진 겹눈 사이에 있는 세 개의 홑눈은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빛의 밝기를 측정해 사물의 원근과 명암 정도를 구별한다 합니다. 잠자리 홑눈 앞으로 살그머니 손가락을 들이밀면 잠자리는 이게 뭘까 머리를 갸우뚱하며 제 발로 손가락 끝에 올라앉지요.

그렇게 잠자리와 손을 잡고 나면 우쭐해져요. 잠자리든 노린재든 곤충을 사랑하는 일은 거의 짝사랑 같아 가끔 심통이 나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잠자리가 내 손끝에 앉으면 잠자리도 나를 좋아하는구나 싶어 우쭐하는 거지요. 그렇게 한참을 손잡고 놀아요. 잠자리의 마음과 내 마음이 잡은 손을 타고 서로에게 전해집니다.

이 친절한 잠자리들이 머리에도 손끝에도 어깨에도 어디든 내려와 앉아 날갯쉼을 하는 이 무렵, 더위 한가운데 오늘은 어느새 입추입니다. 입추는 우리 사람의 절기라기보다는 곤충들의 절기 같아요. 곤충은 항상 한 계절을 앞서 기억하고 준비하지요. 겨울 추위 뒤라야 봄이 온다는 것도 기억하고 여름 더위 뒤에는 가을이라는 것도 곧이어 겨울이 온다는 것까지 잘 기억하여 알고 있지요. 그래서 더위에 꽃들마저 파업하는 이 시기에도 가을을 준비하는 온갖 곤충들로 여름 숲은 들썩입니다.

아무튼 사람에게도 잠자리의 겹눈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두 눈으로 초점을 맞춰 하나의 사물만을 선명하게 보지만 그래서 때론 눈으로 본 것만이 정답이라는 독선에 빠지기도 하잖아요. 잠자리는 2만 8천여 개에 이르는 각각의 낱눈으로 낱눈 수만큼의 사물을 인지하지요. 그렇게 다수의 혹은 다양한 바라봄으로 최고의 사냥꾼이 되었어요. 하나의 눈으로 바라본 하나의 정답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2만 8천여 개의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그 다양함이 그대로 인정될 수 있는 그런 세상, 잠자리의 겹눈이 부러울 수밖에요.

그러나 사냥이 아니라 사랑을 할 생각이라면 겹눈이 아니라 홑눈으로 바라보세요. 비록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런 눈멂이 사랑에 이르게 하는 건지도 모르잖아요. 눈먼 사랑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잠자리의 홑눈 가까이 손 내밀어 손잡는 이유도 그거지요. 홑눈은 오로지 그대의 멀고 가까움과 그리고 그대에게서 뿜어지는 빛만을 느낄 수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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