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편수의 애증
도편수의 애증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7.08.0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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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기이한 설렘을 안겨주는 섬 강화도. 바다 속 같은 여자마음처럼 비밀스런 유물유적지가 많은 전등사의 대웅전은 내딛는 발길마다 신선한 충격이다. 숨을 참으며 다가선 대웅전, 네 귀퉁이마다 지붕을 떠받친 퇴색된 목각상인 나부상(裸婦像)을 차근차근 훑어본다.

벌거벗은 여인을 표현하는 나부상(裸婦像), 대웅전 처마 모퉁이마다 제각기 다른 표정으로 하세월동안 쪼그리고 앉아 있는 나부상 앞에, 자비의 측은지심으로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마니 서 있는 나다. 양손으로 지붕을 떠받들고도 입을 히쭉거리는 표정, 왼손으로 지붕을 떠받들고 오른손을 쪼그리고 앉은 무릎 위에 올려놓고 고뇌에 젖어 시름에 젖은 표정, 또 반대로 오른손을 지붕을 떠받들고 왼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무심한 얼굴, 마지막 양손으로 지붕을 떠받들고 입을 꽉 다문 채 울음을 참는 나부상들, 처마기둥 연꽃 위에 쪼그리고 앉아 얼마 동안이면 죄를 사할까?

전등사는 조선 선조 광혜군때 화재로 전소돼 다시 짓기 시작하여 7년 만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사찰마다 사찰이 들어선 연유와 사찰이름과 그에 대한 전설이 얽힌 많은 유래를 품고 있는데, 전등사 나부상은 공사를 맡았던 목수의 재물을 가로챈 주막 마담의 모습이라는 전설이다.

당시 마니산에 전등사 건립공사가 한창이었고 전문공들이 엄격한 규율에 따라 정성껏 사찰을 짓고 있었다. 사찰을 건립하는 공사이므로 아침에는 손을 정화수에 깨끗이 씻고 승려들과 함께 간단한 예불을 드렸다. 공양도 승려와 마찬가지로 육류와 술 등을 일체 금하는 절 음식을 먹었다. 그러나 육체노동이 생명인 목수들에게 제한 금식이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 예나 지금이나 힘든 노동을 하시는 분들은 으레 음주·가무를 즐기는 법. 이 공사의 책임을 진 도편수는 규율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도편수는 눈에 띄게 손놀림이 노련한 재주꾼이지만 손재주 못지않게 주색에 능한 사내였다. 그런 술꾼에게 사찰의 규율 따위는 대수가 아니었다. 도편수는 몰래 산 아래에 있는 주막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주막 마담의 미모가 천하절색인지라 도편수는 단숨에 술병을 비웠고 향락에 젖어들었다. 살갑게 달라붙는 여인을 잊지 못해 틈날 때마다 도편수는 주막을 찾았다. 완벽한 도편수는 끊임없이 주막 요부와 내통했고 심지어 그간 번 돈도 맡길 정도로 정도 깊어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도편수는 주막을 찾았는데 그 여인이 보이지 않았다. 간밤에 다른 사내와 눈이 맞아 도편수의 돈을 가지고 야반도주를 했다는 것이다. 도편수는 수개월 동안 쌓아온 정과 쏟아온 정성이 분노로 치밀어 올라 복수를 위해 그녀와 흡사한 모습의 나체 여인을 깎아 추녀 밑에 달았다. 죽어서도 옷 한 벌 걸치지 말고 무거운 추녀를 떠받치며 회개하라고 말이다. 당시 복수에 불타 만든 나체형태의 나부상 조각은 예술로 승화되어 전등사 대웅전을 떠받치고 있고 조선 중기 이후 건축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혼탁한 세상, 불교는 단순한 종교의 차원만이 아닌 문화의 중요한 근간을 보여주고 삶을 반추할 수 있는 교훈을 안겨준다. 비록 주색에 눈이 어두워 모든 것을 잃은 도편수의 아픔이 예술조각으로 후세에 빛을 받고 있지만 한편 몽환적 사랑에 씁쓸한 미소가 그려지는 건 왜일까.

도편수의 애증이 깃든 나부상, 통나무 중심에 끌을 대고 나무망치로 머리부분을 쳐서 여인의 형상이 드러날 때마다 지저깨비위에 그의 멍에는 슬픈 사랑으로 녹아내렸을 터. 그의 아릿함이 발길을 잡아선 해넘이에 점점 그림자만 길게 늘어진다. 그날, 나부상을 지근거리에 두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한참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사랑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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