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휴가
8월의 휴가
  • 임성재<칼럼니스트>
  • 승인 2017.08.0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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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8월에 접어들자 장대처럼 쏟아 붓던 장맛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뚝 그치고 섭씨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쏟아진다. 기후변화 탓인지 장맛비가 내리는 양태도 많이 달라졌다. 좁은 지역에 시간당 100㎜가 넘는 집중호우가 내려 큰 피해를 주는가 하면 어느 지역은 마른장마로 가뭄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도 때가 되자 비는 그치고 뜨거운 태양과 무더위가 찾아오는 것을 보면 자연의 변화는 참 오묘하다.

지금부터 약 2주간이 여름휴가의 정점이 될 것 같다. 벌써부터 인천국제공항은 해외여행을 떠나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하고, 국내의 유명 해수욕장과 바닷가 백사장도 몰려드는 사람들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 수해피해가 가장 심했던 청주시 미원면과 괴산군 등의 계곡에도 시원한 여름을 보내려는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그 주변에서 팬션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주민들도 수해의 시름을 딛고 손님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집을 떠나 여름휴가를 즐기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무더위 속에서 일을 하거나 집에서 휴가를 보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은 다음 휴가를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랠 것이고, 자발적인 의지로 집에 남은 이들은 나름의 피서방법을 생각해서 휴가를 즐기게 될 것이다.

나의 올여름 휴가목표는 휴식이다.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던 일상을 멈추고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다행인 것은 미리 휴가를 계획했더라면 수해복구를 위해 뙤약볕 아래서 동분서주하는 옆 동네 친구들에게 면목이 없어 아마 출발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간이 문밖으로 스치는 바람은 선선함을 머금고 있으나 내리쬐는 햇볕은 따갑다. 작은 선풍기를 틀어놓고 앉아 책을 읽거나 가끔은 시내에 나가 팥빙수로 더위를 식히고, 밤에는 시원한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좋은 휴식이 될 것 같다.

이번 휴가 때 읽을 책은 미리 정했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다. 서너 번 읽은 책이지만 다시 한 번 정독하고 싶었다. 아킬레우스, 헥트로, 사르페돈, 아가멤논 등 수많은 고대 영웅들이 펼치는 대 서사시는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 한편을 보는 것처럼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운명과 맞서는 인간의 용기, 백성의 왕이기에 비굴하게 피하지 않고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 등 그들이 보여주는 인간상은 돈의 가치에 매몰된 우리 사회에 정의나 명예, 용기 같은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또 영화는 `군함도', `택시운전사' 같은 사회성 짙은 수준급의 작품들이 개봉됐다. 한수산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한 `군함도'는 바다 한가운데 군함모양으로 떠있는 하시마섬 탄광에 전쟁의 도구로 끌려간 조선인 노동자들이 겪는 참담한 생활을 담고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광주5·18민주화운동을 다룬다. 독일의 방송기자로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로 잠입해 광주사태를 처음으로 전 세계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와 서울에서 그를 광주까지 태워다준 택시기사와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이 영화는 지난 보수정권 10년 사이에 망가져버린 우리나라 공영방송에게 기자정신, 진정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를 통렬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 것도 휴가를 보내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2014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10세 이상 국민들의 하루 평균 독서시간은 평균 6분이라고 한다. 10분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은 9.7%에 불과했다. 그리고 한 달 평균 독서량은 우리나라가 0.8권인데 반해 미국은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 중국 2.6권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시아권 나라에서도 형편없이 책을 안 읽는 편에 속한다. 이번 휴가 때 여러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어 우리나라 평균 독서량과 독서시간이 늘어나면 좋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을 돌아보는 차분한 휴가를 통해 익어가는 여름더위만큼이나 우리의 정서와 문화적 감수성이 익어가는 휴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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