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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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7.08.0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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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교수들끼리 자전거를 타고 즐겨 가는 데가 있다. 피반령인데 임도로 올라가서 날망에서 포장도로로 내려오길 종종 한다. 임도에 자갈도 많고 가끔은 멧돼지도 나오지만 청량한 산속의 기분은 무엇과도 바꾸지 못한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땀범벅이 되었을 때, 속도감을 느끼면서 내려오면 정말로 신난다.

자주는 못한다. 학기 중에는 이 일 저 일 생겨 미루다 보면 한 두 번 가기도 힘들다. 방학이 되어서야 `오늘 할 일 내일로 미루자'는 생각으로 앞뒤 가리지 않아야 갈 수 있다.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쾌감을 맛보면 다음부터는 꼭 나가야지라고 하면서도 한두 번 미루다 보면 나가기도 계면쩍어진다. 그래서 짬이 생기면 무조건 나가야 하는데도 쉽지 않다.

자전거는 극단의 운동이다. 고개를 하나 넘을라치면 기진맥진 기운이 다 빠진다. 그런데 자전거의 맛이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진을 다 빼고 보상으로 시원한 내리막길을 가져다주니 말이다.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온다'는 진리를 몸으로 깨닫는 순간이다. 특히 나이 들어 권할 만한 것이, 다른 운동은 무릎에 무리가 오지만 이것은 안장에 체중을 실어서 그런지 그런 부담이 없다. 아프면 사타구니지, 무릎이 아니다.

피반령을 향해 도로로 반쯤 달리면 `주사랑 병원'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얄궂게도 바로 그 옆에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이 나온다.

나는 처음 `주사랑'이라서 농담 삼아 그 병원에는 `술 주(酒)'자 주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가보다 말을 하곤 했다. 나 같은 사람이 입원하면 밤에는 양조장에 가서 살지나 않을까 하는 우스갯소리였다.

알다시피 주사랑이란 `주가 사랑을 하는, 주에게 사랑을 받는'(beloved)의 뜻으로 쓰는 것이다. 외딴곳에 단독 건물로 되어 있어 요양병원 정도로만 추측할 수 있었는데, 이게 웬일, 그 병원은 `알콜 중독 전문병원'이었다. 다른 진료과목도 있지만 주로 알콜 중독과 연관되는 것이었다.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농담이 아닌 진담이 되었으니 말이다. 분명 병원으로 양조장의 막걸리 내음이 솔솔 넘어올 텐데 환자들이 어떻게 이를 참느냐는 우려였다. 몇 걸음만 가도 양조장인데 어쩌면 좋냐는 걱정이었다. 술 끊기가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자전거 동호회에는 의대교수도 있는데, 그분 대답이 걸작이다. 그런 술 향기를 이겨낼 수 있어야 진정 알콜 중독치료가 끝나는 것이라고.

무엇이 옳을까? 일단 멀리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곁에 두고 마음을 달래면서 이겨내는 것이 좋을까? 술을 끊겠다며 모든 술을 버리고 나서는 곧바로 술 사러 가는 사람들이 술꾼이다. 주위에 있으면 마시게 되는 법이라서 그렇다.

물론 그 양조장이 술을 팔 리 없다. 게다가 동네 사람이 아니고서야 걸어오는 사람에게 공연히 술을 건넬 일도 없다. 그렇지만 무엇이 술을 끊기에 좋은 환경일까? 어쩌나 이렇게 나란히 들어서게 되었을까?

나는 담배를 끊을 때 담배 한 개비와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옆에 있어야 덜 불안한 것도 있지만, 지니고 있으면서도 피지 않아야 진정 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에 동의한다면, 그리고 알콜 치료를 받아야 하겠다고 느낀다면, 그곳 주사랑병원을 적극 추천한다. 나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충북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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