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의 끝
항문의 끝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7.08.02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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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권 혁 진

입에서 항문까지는 참으로 멉니다
나의 평생은 이 긴 터널을 빠져나가는 일입니다
한 올의 광명도 없는 좁은 터널을 고통스럽게 지나가는 일입니다
끝내는 명부冥府로 이어지는 이 길은 깊어질수록 숨막힙니다
침에 젖고 피가 묻어 나는 천하게 하강합니다
구불텅구불텅 만신창이로 흘러갑니다
한치 앞이 두려운 동굴 밑에서 익사는 죄악입니다
죄악의 긴 세월 미로 속에서 나의 눈 나의 귀는 퇴화합니다
코가 지워지고 팔다리가 떨어지고 똥처럼 오줌처럼 변해갑니다
평생의 눈물 평생의 절망과 오욕 마침내 나는 똥이 되고 오줌이 됩니다
그리고 참을 수 없이 항문 끝에서 나의 한 생은 끝이 납니다 털썩

# 입에서 항문까지의 거리를 보고 시인은 한 사람의 태어남과 죽음이란 여정을 봅니다. 몸 안의 이 거리는 기껏해야 1m밖에 안 되지만 숨이 막히고, 피나는 고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달콤한 음식도 똥이 되고 오줌이 되는 현실이고 보면 온갖 욕망과 집착도 공허한 일임을 깨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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