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사람값
담뱃값, 사람값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7.08.0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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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결국은 담배를 끊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부자증세'로 상징되는 문재인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오늘(2일) 발표될 예정이다.

초거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증세가 예상되는데 극성의 물신주의 사회에서 부의 지나친 편중과 소득불균형의 해소라는 경제민주화 차원의 해법이 제시될 듯하다.

소득 수준의 현저한 차이를 불문하고 우리 국민의 조세에 대한 반감과 저항은 꽤 오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조선을 망국에 이르게 한 구한말 탐관오리들의 수탈과 일제치하의 강탈 및 강제공출은 백 년이 넘도록 여전히 세금을 부정적으로 여기게 하는 요인으로 지속하고 있을 만큼 뿌리가 깊다.

부자증세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야당 일각에서 돌연 담뱃세 원상회복을 들고 나왔다. 흡연으로 인한 국민의 건강을 위한다던 담뱃값 인상의 호기는 정권이 바뀌면서 돌연 실종되고, 국민 부담의 경감이라는 물신주의를 자극하고 있다. 그 와중에 나는 담뱃세 인하 꼼수에 휘청거리며 아무래도 사람값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

소득 재분배와 경제 선순환 구조의 회복을 근간으로 하는 부자증세를 통해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정부 여당에 맞서는 담뱃세 인하 시도는 국민을 흔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야말로 꼼수의 극치인 셈이다. 이로 인해 돈을 숭배하는 물신주의는 극심해 질 것이고, 더불어 한쪽은 올리고 다른 한쪽은 내리는 국민적 혼란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돈에 대한 욕망의 자극을 통해 촛불혁명의 결연한 의지를 무색하게 하는 분열은 가속화 될 것이다.

가난은 스스로이거나 상대적으로 부자인 타인에 의해 어떤 형식으로든 멸시를 동반한다. 흡연 역시 본인은 물론 간접흡연으로 인한 타인의 건강 위협을 이유로 노골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한때 각 지방자치단체는 앞다퉈 내 고장 담배 팔아주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친 적이 있다. 성공한 출향인사들은 물론 타지역으로 출장을 가는 경우에도 담배는 내 고장에서 사가지고 갈 것을 종용할 만큼 담배세수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담뱃세 인상으로 인해 두 배 가까이 오른 담뱃값에도 흡연을 계속해 왔던 나는 돈도 더 내고, 욕은 욕대로 더 먹는 극단의 비인간적 행위를 거듭하고 있음과 다름없다.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담뱃세 인하 시도는 참담하고 씁쓸하다. 큰 놀림거리가 되어버린 처지에 내몰린 것 같아 불쾌하기 그지없다.

국정 농단을 뛰어넘어 파탄의 지경에 이르도록 무심했던, 그리고 그런 무책임에도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당의정으로 담뱃세를 무지막지하게 올린 이들은 지금의 그들과 다른 사람들인가. 정권의 곳간을 두둑하게 부풀리던 시절의 서민은 지금 서민과 다른 사람들인가. 부자증세를 통해 일자리를 만드는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안간힘을 담뱃세 인하라는 꼼수를 통해 흔들 수 있다는 계략은 불행하지만 일정 부분 들어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자도 아니면서 굳이 형평성을 내세우며 부자를 옹호하고, 그 그늘에서 기생하려는 패배의식도 더욱 팽배해질 것이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아직도 흡연의 불길한 욕구를 지우지 못하는 애연가들이 받은 멸시와 수모, 그리고 그동안 마음껏 농락당했다는 자괴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담배를 끊어야 할 때가 됐다. 담뱃세 몇 푼 깎아 준다고 휘둘리지 말고 사람값은 하고 살아야겠다. 벌써 국회의원 선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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