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언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 임형묵<수필가>
  • 승인 2017.07.3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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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형묵

예측이 빗나간다. 길이 나고 또 다른 넓은 길이 생겨도 차는 제 시간에 맞춰 연수 장소인 목적지에 대지 못한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알아본 시간과 접근 방식이 맞겠지 했는데 그런 생각과 판단이 달랐음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도로상황과 기상 상황에 따라오는 변수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서울 올라오는 첫날에는 독립문역을 지나면서도 독립문을 보지 못했다. 시야에 들어오던 아파트가 어느 아파트인지, 상점에서 무슨 물건을 파는지 살필 겨를 없이 걸었다. 정강이 근육이 땅길 정도로 허겁지겁 언덕길을 올랐다. 비가 온다기에 편의점에서 우산을 산 게 전부였다고 할까. 닭 강정을 파는 가게가 있고 `맛있게 잡수세요.'라는 광고 글귀를 유리창에 써 놓은 뻥튀기 집이 있어도 그런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을 순환버스가 붕붕거리며 언덕길을 올라온다. 차가 다가와도 목적지까지 타고 가지 않고 그냥 보낸다. 언덕을 오르고 계단을 내려가며 조바심내지 않고 동네풍경을 살핀다. 여유가 있으니 눈이 호사한다.

창을 열고 거리를 내다보는 사람, 차 시동을 걸고 새롭게 아침을 맞는 사람 그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본다. 골목길을 걸어 내려오다 마주하는 사람도 있고 갓난애 손을 잡고 커다란 휴지 뭉치를 들고 언덕을 오르려는 아낙의 미소에서 신혼시절 언덕 위 이층집에서의 추억을 떠올린다. 먹을거리와 음료를 사 담은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뛰다시피 집으로 향하는 청년의 얼굴에서 아들의 얼굴을 반추한다.

길모퉁이 집 대문 옆에는 쓰레기를 담은 봉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고장 난 벽시계와 낡은 책상도 한옆에 널브러져 있다. 어디나 할 것 없이 사람 사는 풍경 별다르지 않나 보다. 전봇대에 써 갈긴 낙서문구며 집 대문에 매달린 우유 주머니와 물받이 홈통과 벽 사이에 끼어 있는 상품 홍보전단을 보니 하루의 삶이 고단한 건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여유를 가지고 걷는 길이라면 즐겁다. 바삐 걸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간에 쫓길 적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을 보며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정해진 시간과 목적한 곳에서 벗어나 본다. 벤치에 앉아 도심의 풍경을 내려다본다. 콘크리트이거나 묵직한 벽돌로 세워진 성곽 같은 건물에서도 온기가 느껴진다. 바람이 전하는 말을 꽃이 알아들었을까. 한들한들 몸짓을 뽐내는 자귀나무 꽃의 떨림을 지켜본다. 길가에서 수줍음을 드러내는 하얀 꽃나무에서 그리움을 훑는다.

마을버스가 수시로 오간다. 수많은 사람의 생각과 표정을 내려놓고 언덕을 내려간다. 하루의 삶이 넉넉하지 않아도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 그들에게도 여유가 넘쳐나는 삶이 이어지기를 희망해 본다. 꿈을 향해 아침을 맞는 그런 시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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