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발등 찍는 자유한국당
제 발등 찍는 자유한국당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07.30 17: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서민의 대표적 기호품으로 꼽히는 것이 담배와 소주다. 소주 한 잔과 담배 한 모금으로 고된 일상의 애환과 스트레스를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가격 등락이 소비자들에게 매우 민감하게 작용하는 품목이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난 2005년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대표 시절 노무현 정부가 담뱃값 500원 인상을 추진하자 “서민이 애용하는 상품은 올리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반대했다. 당시 한나라당도 정부의 담뱃값 인상을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 세수를 확충하려는 편법”이라고 비난했다.

당시 한나라당의 논리는 10년 만에 전도됐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무려 80%나 올렸다. 흡연의 폐해로부터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이 명분이었다. 가격 부담을 줘서 흡연 포기를 유도하겠다는 발상이었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국민건강을 핑계 삼은 기만적 서민 증세라고 반발했다. 10년 전 자신들이 했던 주장을 야당이 그대로 되풀이했지만 정부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인상을 강행했다.

최근 새누리당서 간판을 바꾼 자유한국당은 입장을 또 번복했다. 자신들이 밀어붙인 담뱃값 인상은 실패작이 됐다며 가격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 정치판에서 누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겠다고 나서는 행위는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만큼이나 희귀한 일이다. 국민 신뢰도 조사에서 정치가 늘 바닥을 기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유한국당이 자발적으로 지난 정책의 과실과 오류를 인정한 점은 선양하고 장려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찬사보다는 눈총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자백한 시기부터가 문제이다. 전 정부는 2015년 1월 `담뱃값 인상으로 소비가 34% 감소할 것'이라는 조세재정연구원의 조사를 근거로 담뱃값을 올렸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불과 몇 개월 만에 휴짓조각이 돼버렸다. 반짝 감소했던 흡연율은 급반등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담배 판매량은 2015년 수치를 훌쩍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목표는 바로 시들해지고 정부가 발뺌했던 세수 증진에서는 대박이 터졌지만 정부와 여권은 과실 인정은커녕 사실 호도로 일관했다. 5조원 이상이나 늘어난 세수의 혜택을 누리다가 살림살이를 남이 맡게 되자 돌연 세금을 돌려주자고 나섰으니 진정성을 의심받고 `자신들이 올린 서민 세 부담을 구실로 정부 증세정책에 맞불을 놓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무책임한 행태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담뱃값을 인하할 경우 5조원 이상 세수 공백이 불가피해진다. 나라 살림은 있을 때 쓰고 없을 때는 안 써도 되는 주먹구구로 꾸려지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새로 들어선 정권이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비한 재정 확충이 불가피하다며 증세를 추진하는 판이다. 여기에 아무런 대안도 없이 감세 법안을 내놓고 정부의 증세 방안에는 결사 반대하고 있으니 국정의 한 축인 제1야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느냐는 반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대선 때 국민과 약속한 공약이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지난 대선 때 한국당 공약 중 하나가 문재인 대통령과 같은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이었다. 그러나 한국당은 얼마 전 정부가 추진한 최저임금 16.4% 인상을 `과속'이라며 반대했다. 이 밖에도 대선에서 한국당이 내놓은 주옥같은 공약들은 수두룩하다. 청년일자리 110만개 창출을 약속했고 10조원을 들여 강소기업들을 육성하겠다고 했다. 65세 이상 고령연금을 30만원으로 올리고 소득 하위 50% 가구의 초중고생들에게 월 15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고도 했다. 치매 예방에서 치료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대형 점포의 골목상권 출점을 규제하겠다고도 공약했다. 그러나 한국당이 이 숱한 공약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실천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왜 유독 담뱃값 인하가 지켜야 할 국민과의 약속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흡연자들이 기만적 정책의 희생자가 됐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해자 격인 자유한국당은 실패를 자복하는 선에서 멈춰야 한다. 병을 준 사람이 처방에 앞장설 자격은 없다.

자신들이 저지른 정책적 오류를 바로잡는 역할은 정부와 국회에 맡기는 것이 상식이다. 대신 지난 대선 때 자당의 공약집을 찾아 꼼꼼히 정독하며 앞으로 할 일을 찾아보길 권한다. “패배한 정당도 공약은 지켜야 한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으니 하는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