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 인연
우주적 인연
  •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07.2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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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인연이라고 할 때 인이 비롯할 인(因)이 아니라 사람 인(人)으로 느껴지는 것은 나의 무식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연이란 사람을 포함해서 만물이 서로 연관되어 있는 관계를 일컫는 말임이 틀림없지만 우리 인간사에서 인연이라고 하면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진 관계를 뜻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 말을 사용하는 주체가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 사이의 인연은 혈연, 지연, 학연 등 수많은 관계로 얽혀 있다.

한 사람이 갖는 이 인연들이 곧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이니, 인간에게 이 인연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그렇다면 인간이 아닌 물체에도 인연이 있을까? 물체에도 당연히 인연이 있다. 태양과 지구는 서로 끌어당기고 있으니, 이 둘은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지구와 달도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뉴턴은 이러한 인력이 태양, 지구, 달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천체들 사이에는 물론 돌멩이와 지구 사이에도 있고, 돌멩이와 돌멩이 사이에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중력을 `만유(萬有)인력'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물질 사이의 인연은 가히 우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 사이의 인연에 혈연, 학연, 지연이 있다면 물질들 사이의 인연에는 중력, 전기력, 핵력이 있다. 그리고 이 물질들 사이의 인연은 지구에만 국한되지 않고 먼 별나라까지 우주의 구석구석 어디에나 있다. 이렇게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이 우주적 인연에 비하면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우주적 인연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우주에 입자 하나만 있다면 인연이 있을 수 없다.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은 그야말로 완전한 자유일 것이다. 이 완전한 자유에 무슨 인연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인연은 아무리 미화시켜서 말해 봐도 어쩔 수 없이 속박을 유발한다. 우주에 혼자 있는 입자, 완전한 자유인 이 입자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음이 없이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입자가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주에 편재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입자가 둘이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인연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인연은 서로 속박하게 된다. 이 속박으로 인해서 이 두 입자는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게 된다. 두 개가 아니라 더 많은 입자가 있다면 이 인연은 매우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더 많은 속박이 생겨나고 입자는 자유를 잃게 된다. 양자역학은 이 우주적 인연의 속박 정도를 계산하는 학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소립자 하나는 우주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이 순간 여기에 있지만 다음 순간 미국에 있을지 아니면 저 먼 안드로메다 성운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여기 이 돌멩이 하나는 오늘도 여기에 있고 내일도 여기에 있고, 건드리지만 않으면 우주가 끝날 때까지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왜 그럴까? 인연 때문이다. 이 돌멩이 하나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원자들은 인연들로 서로 얽혀 있다. 중력, 전기력, 핵력 등이 그 인연들이다. 이 인연들 때문에 돌멩이 하나는 자유를 잃고 여기 이렇게 죽치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 돌멩이뿐이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저 시골 마을에서 지팡이를 짚고 가는 한 노인을 보라. 그가 왜 저 돌멩이 모양, 이 시골에 처박혀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을까? 인연 때문이다. 조상의 인연, 처자식의 인연, 집안의 인연, 친구의 인연, 수많은 인연들이 그 노인을 이 시골에 묶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우주 어디에라도 갈 수 있었던 돌멩이가 인연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듯이, 세상을 발아래 두고 훨훨 날아다닐 수 있었던 저 노인도 인연 때문에 이렇게 좁은 울타리 속에서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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