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하룻밤
  • 정명숙<수필가>
  • 승인 2017.07.2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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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숨넘어가게 웃는다. 탑승권을 받으며 참았던 웃음이 터졌다. 처음 듣는 이름도 아닌데 왜 이리 촌스러울까. 만나면 속내를 보이며 수다를 떨기는 했다. 오늘처럼 눈만 마주쳐도 웃음보가 터지진 않았다.

초등학교 친구 여섯 명이 제주도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시골출신답게 이름도 촌스럽다. 명자. 순자. 명숙. 명순. 순례. 그나마 좀 괜찮다 싶은 선기가 있다. 머리모양은 나이에 맞게 짧은 커트에 뽀글이 파마로 단정하게 빗어 넘겼다. 옷차림도 이름과 어울린다. 공항패션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그래도 선글라스는 다들 챙겨왔다. 순자는 모자도 두 개, 선글라스도 두 개다.

이틀 동안 차를 렌트했다. 운전대는 순례가 잡고 나에게는 운전할 줄 안다는 이유로 조수석에 앉아 인간내비게이션 역할을 맡으란다. 숙소는 공항 가까운 곳에 정했으니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 삼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여섯 명의 수다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고생담을 농담처럼 말해도 진지하게 듣고 추임새를 넣었다.

짊어진 삶을 내려놓고 보이지 않아 불안한 미래의 걱정도 잊은 채 눈물이 찔끔거리고 허리가 휘어지도록 깔깔거렸다. 그중 명자의 웃음소리가 제일 높다.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수학여행 온 것처럼 목청 높여 교가도 부르고 동요도 부르면서, 요즘 세상에 누가 망태 메고 뒷동산에 올라 장대로 달을 따느냐며 명순이가 조용조용 느리게 말을 하자, 다시 웃음바다다.

친구들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명순이는 이년 전,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더니 치매까지 와서 잠시도 곁을 비울 수가 없다.

게다가 시부께서는 말기암환자 시고 시모도 중증 치매다. 시부모와 남편의 병수발은 온전히 그녀 몫이지만 불평 없이 끌어안고 간다. 한 친구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사 남매의 뒷바라지에 젊은 날을 희생했지만 자식들은 모두 단단한 직장을 갖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겨울 살짝 넘어졌는데도 양쪽다리가 부러져 고생한 순자는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해 늘 조심스럽고, 이년 전, 남편과 사별한 명자는 혼자 식당을 운영한다. 순례는 십여 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으나 간병사로 일하면서 병을 극복했다.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딸 내외는 외국에서 살고 있고 아들이 제주도에서 병원장으로 있으니 작심하고 내놓는 자식자랑이 계속 이어져도 지루하지 않다.

이름만큼 촌스런 할머니들이 제주도에서 하룻밤을 잔다.

세월이 할퀸 자국을 공평하게 나눠 같고 잔잔한 항구에 닻을 내렸다. 민 낯을 보여도 민망하지 않고 가릴 것도 없는 사이다. 입이 마르도록 수다를 떨고 깔깔거리다 하나 둘 잠이 든 모습이 편안하다. 우리가 이 섬으로 마치 수학여행 오듯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무도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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