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서 알 수 있는 것
지나고 나서 알 수 있는 것
  • 배경은<청주노동인권센터>
  • 승인 2017.07.2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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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배경은<청주노동인권센터>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출퇴근 시간의 분주함은 보이지 않는다. 출근시간이면 늘 바쁘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를 팔로우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끼어드는 차가 얄밉고 추월하는 차가 부럽고 나의 어린 말초신경은 팔딱이며 여기저기에 시비를 걸면서 조금씩 날카로워지곤 했다. 그 광경을 볼 수 없는 안도감은 생각보다 좋은 기분이다. 그렇게 느긋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그녀의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심호흡을 한 다음 전화를 건다.

한참만에 전화를 받는 그녀의 목소리는 어제처럼 조금 지치고 느려져 있었다. 그녀의 알 수 없는 피로도가 느껴진다. `000선생님이 신가요?', `예', `노동인권센터에요, 어제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퇴근하고서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오늘은 근무 날이 아닌데 나와서 다시 전화를 걸었어요. 제가 어제 사과를 제대로 했는지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선생님의 마음이 읽혀져서 꼭 전화를 드려서 다시 사과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큰돈을 선뜻 내주셨는데 소홀하게 다룬 거 같아 너무 죄송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전화가 끊어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내가 먼저 `여보세요...'할 때까지. `그렇게 말씀하니까 제가 더 미안해지네요. 사실 어제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 몇 번이나 전화를 해서 확인을 했는데 전화를 끊고 났더니 또 전화를 여러 번 한 것에 대해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전화를 다시 주시니 제가 고맙네요.'우리는 이렇게 이야기를 풀며 마음을 조금씩 열었다.

후원을 하게 된 계기와 천주교에 대한 깊은 신앙심과 센터 대표 신부님에 대한 신뢰감을 알 수 있었고 대화 중에 나는 전화를 다시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집이 옥천이지만 자주 청주에 나온다는 말에 꼭 센터에 들러 줄 것을, 그러면 맛있는 차를 대접해 드릴 것을 약속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센터 활동가로서 지난 4개월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준 작은 사건? 이다. 긴 육아 기간을 빼고 나면 일을 한 지는 10여년 정도 된다. 돌이켜보면 최소한 하기 싫은 일을 직업으로 삼았던 적은 없었고 하는 일에 대한 나만의 성취감과 자부심이 있었다. 주로 상담하는 일을 했었기에 개인적이고도 은밀한 일을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무엇보다 내담자와의 라포 형성이 끝나고 나면 친구처럼 그들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센터로 옮기고 나서는 일과 관계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에게 놀랐던 것은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했던 일은 적응이 필요 없을 만큼 내게 가까운 일이었음을 새삼 느낀다. 그만둘 때는 나름의 스트레스로 쉼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기에 지금처럼 관조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그 시공을 빠져 나와서 마주 보고 있으니 하나하나 참 고맙고 감사한 일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들어와 청량해진다.

지금도 생경한 일들과 조우하고 당황하는 일들이 종종 있지만 지나고 나면 고마운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리라 예상한다. 아마도 이 뜨거운 계절도 지고 나면 다시 생각나고 그립기까지 한 계절임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되짚어 보니 모든 것이 아름답지 않은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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