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 안승현<청주공예비엔날레 팀장>
  • 승인 2017.07.25 1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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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난리도 이런 난리가 있을까? 작년에 주변의 돌과 자갈을 주워 다 만들어놓은 장독대가 산 흙이 밀려와 아수라장이 되었고, 좀 더 먼 잔디밭에는 부식토가 되기 전의 나뭇가지와 나뭇잎, 멀칭에 쓰였을 듯한 비닐 등이 쌓여 있다. 뒤편 밭과의 경계에 축대는 밀려 내려온 흙을 이기지 못해 기울어지고 갈라지고, 축대를 넘어온 흙은 창고며 길까지 덮었다. 이런 제기랄! 장비도 들어올 수 없는 비좁은 곳에 이런 난리라니.

얼마 전 뒷밭의 물길이 내가 사는 집에 설치된 맨홀에 연결된 터라 정비를 했던 적이 있다. 땅주인이 장시간 관리를 안 한, 물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라, 남의 땅이긴 하지만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삽을 들었다. 연신 삽질을 하며 도랑을 만들어 나갔다. 얼마나 했을까 잘 파지던 땅에 삽날은 돌에 부딪혔고, 잔돌을 힘겹게 걷어내며 물길을 만들던 중 난관에 봉착했다.

돌에 삽날이 튕겨 삽질할 수 없는 상황에 돌부리가 나온 것이다. 이런저런 도구로 파내었지만 돌부리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형상이었다. 땀은 비 오듯 하고 귓가에 모기떼가 기승이라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저 돌부리만 빼내면 물길이 제대로 잡힐 텐데…. 큰비는 없겠지, 저 정도면 우선 물길은 잡혔을 거야, 내심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한 자신을 위로했다. 저 정도면 뭐. 그래도 해결 못 한 찝찝함이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 비가 그 돌을 뚫지 못해 집 뒤편으로 방대한 양의 토사를 흘려 내린 것이다. 후회를 한들 이미 사태는 벌어졌다. 끝내 해결 못 한 나를 원망하며 또 원망했다. 아내에게는 전 상황의 이야기를 못 했다. 창피해서…. 한번 시작하면 밥도 안 먹고 끝장내는 성격의 소유자로 아는 아내였다. 처음 겪는 일이라 망연자실한 상황에서, 옆으로 커다란 돌 하나가 굴러와 있었다. 그토록 빼내려고 했던 그놈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렇게 용써 빼내려 했던 돌이 빠져 집 뒤편으로 내려와 있었다. 토사로 엉망이 된 집의 걱정보다 앓던 이가 빠진 듯한 통쾌함이 자리하고 있다.

잔디 깎기도 토사에 묻히고 전기조명기구도 흙에 묻혔는데, 이 쾌재는 뭐지? 저 돌이 빠졌다. 저 정도 크기였다니? 좀 더 파내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건데. 이런…, 이건 인재다. 도구를 가진 힘 있는 내가 용을 썼다. 내가 이까짓 거 하나 해결 못 할까 하고, 그런데 작은 땀구멍에서 나오는 찝찔한 액체와 에엥 거리는 소리가 짜증이 나고, 나이가 먹은 것인지 힘에 부치다는 이유로 포기한 것이다.

내가 포기한 것을 흐르는 물이 주변을 파내며, 큰물을 이끌어 커다란 돌을 옮겨놓은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포기했던 내가 창피한 상황이다. 문화재를 발굴하듯 인내심을 가졌더라면…. 결국 정성이 부족했던 나를 꾸짖는다.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신고하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뒤로 한 채 매일 한 삽 한 삽 토사를 뜨면서 나를 벌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런 바보 같은 놈 같으니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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