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하는 독서, 여행
서서 하는 독서, 여행
  • 이은희<수필가>
  • 승인 2017.07.2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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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은희

느낌이 참 다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 다랑쉬오름을 오르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치자 향이 온몸에 스미는 두모악 뜰과 김영갑 갤러리에서도 그의 작품에 취하여 무아지경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달라진 건 동행자뿐이다. 여행에서 수려한 풍경도 좋지만,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다. 동행자가 누구냐에 따라 여행의 멋과 맛이 달라진다는 걸 새삼 깨우친다.

여행에서 동행자는 서로 간의 복불복(福不福)이다.

사람마다 개성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다. 그것을 무시하고 여행을 위하여 공감대를 억지로 형성할 순 없으리라.

또 여행을 가고자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기란 더욱 어려운 일. 적어도 평소에 마주 보고 밥 세 끼를 먹어보든가, 아니면 1박 2일 잠자리를 함께하면 가능하련가.

중국 작가 잔홍즈가 말한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다'에 공감한다. 그의 저서인《여행과 독서》를 읽으며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특히 평소 절감했던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다'에 매료된다. 독서는 내가 가보지 못한 곳으로 친절하게 안내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상상하게끔 인도한다. 또한, 여정에서 느낀 감정과 물상을 비교하며 즐기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인생도 여행이지 않은가. `여행이란 인생을 용감하게 살아내는 일이다'란 말처럼 정녕코 용감하게 살아내지 않으면 삶의 밑바닥에 주저앉기에 십상이다. 그저 밥 벌어먹는 일에 목숨 걸다가 생을 마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감해질 수밖에 없는 일상이다.

돌아보니 삼십 대 후반은 그 어느 것도 놓칠 수 없는 시기라 직장과 자택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오갔다.

늘 가슴에선 웅얼거리며 용솟음치는 것이 있었다. `난, 밥벌이의 노예로 살다 갈 순 없어'라고 가슴의 언어가 매번 체온을 높였던 것 같다.

제한된 시공간에서 몸부림치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독서와 글쓰기이다. 평일에는 하루 12시간 이상 직장에 머물고, 밤으로 틈나는 시간에 여러 곳에서 청탁받은 글을 지어 발표한다. 가끔은 가보고 싶은 곳을 미리 정하여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잔홍즈 작가의 말대로 서서 하는 독서는 여행이다. 여행자가 되어 공간과 공간 사이를 이동하며 만난 만물과 관계를 맺으며 깨달음은 심연처럼 깊어진다.

책 속 여행지 두모악 갤러리를 찾아 그의 감각을 느끼고자 한다. 용눈이오름의 부드러운 능선과 오묘한 하늘. 흔들리는 나무의 신비스러운 빛깔과 몸짓에 일순 숨이 멎는다.

풍경 속에 내가 있는 듯 착시를 일으키는 작품이다. 김영갑 사진작가가 중산간을 오르내리며 카메라에 담은 사진에서 바람의 결이 느껴지니 무엇을 더 바라랴.

무엇보다 인생을 용감하게 살아낸 그의 처절한 삶이 가슴을 울린다.

서서 하는 독서는 결국 여행이 끝난 후에야 시작된다. 진정한 나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무엇보다 기분 좋은 여정은 기억되어 생생한 기록으로 표현되리라. 그 기록은 훗날 삶을 반추하거나 다른 이의 여정을 도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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