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체육회의 ‘마이가리’ 과장
천안시체육회의 ‘마이가리’ 과장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7.07.24 2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예전에 군대 용어 중에 `마이가리'라는 게 있었다. `가불(假拂)'과 비슷한 말로 품삯이나 급여 따위를 미리 앞당겨 받는다는 뜻의 일본말 `마에 가리(前借り,まえがり)에서 나온 말이다.

주로 계급장 앞에 붙여서 흔히 썼는데 이등병이 일등병 계급장을, 상병이 병장 계급장을 달고 다는 것을 `마이가리 일병', `마이가리 병장'이라 불렀다. 과시용으로 실제 자신의 계급보다 높은 상위 계급장을 달고 다니던 군인들에게 쓰던 말이었다. 물론 자신이 마음대로 상위 계급장을 달지는 못했다. 선임 병사들이 휴가를 나가는 졸병들에게 마이가리 계급장을 달아주곤 했는데 휴가 중에 `다른 부대의 상위 계급 사병들에게 기죽지 말라'는 배려심이 내포돼 있었다.

병과 별로는 헌병대에서 마이가리 계급장을 가장 많이 남발했다. 정문을 지키는 초병이나 순찰 검문을 하는 하위 계급의 헌병들이 상병이나 병장 등 타 병과의 선임병을 검문해야 하는 상황에서 생길 수 있는 마찰을 피하기위해 일부러 실제보다 높은 가짜 계급장을 달아줬다.

훈련소에서도 조교들에게 마이가리 계급장을 남발했다. 조교들의 영을 세워주기 위해 거의 `합법적(부대 차원에서 인정해 준다는 뜻)'으로 1계급 이상의 마이가리를 허용했다. 지금도 이 마이가리 계급장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경기도 연천, 강원도 철원, 양구 등 군사 도시에 가보면 시외버스 터미널 주변에 마이가리라는 선전 문구를 써 붙인 휘장사들이 영업 중인 것을 볼 수 있다.

천안시체육회 사무국에 `마이가리 과장'이 생겼다. 특혜 채용 논란의 당사자인 P씨가 장본인이다.

그는 지난 4월 초 전문체육팀장에서 신설된 훈련과장으로 승진했다. 체육회사무국에서 명패도 만들어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무국은 그에 대한 인사 발령 공고를 하지 않았다. 사내 연락망에도 P씨가 과장으로 승진했다는 내용의 공지는 뜨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한동안은 P씨가 승진한 지도 모르고 직전 팀장 직함을 부르던 부하 직원들도 있었다. 사무국이 이사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마이가리 계급장'을 달아준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었다.

천안시체육회 규약에 따르면 사무국 조직 개편을 위한 국무규정의 개정은 이사회의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승인 절차를 밟을 시간도, 훈련과 신설안이 승인될 가능성도 애초에 전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상임부회장이 `정치자금 제공 사실'을 떠벌리던 P씨의 입을 황급히 막으려 황당무계하고 전무후무한 `마이가리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P씨가 과장이 되면서 사무국은 졸지에 기형적인 조직이 되어버렸다. 4월 초에 `낙하산'으로 내려온 H씨까지 과장 발령을 받으면서 과장 4명에 사원은 단 3명인 `역삼각형' 기구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지금도 P씨는 자신의 부서에 사원이 1명도 없는 `나홀로 과장'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

`기만'의 목적이 있긴 하지만 군대에서의 마이가리 계급장은 그래도 애교가 있었다. 고참병들이 졸병을 아끼는 마음이 녹아든 인정과 배려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안시체육회의 `마이가리 계급장'에 배려 따위는 없다. 악취만이 진동하고 있을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