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규 시인의 문학 칼럼
김창규 시인의 문학 칼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1.2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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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작가들과 문학
평양의 작가들은 주체문학으로 무장되어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주체문학 '주체문학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평양의 작가들은 주체문학의 대강을 이렇게 말했다. "종자는 작품의 핵으로써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문제가 있고, 형상의 요소가 뿌리내릴 바탕이 있는 생활의 사상적 알맹이다. 종자는 본질을 옳게 리해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생활의 사상적 알맹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부터 똑바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현상에 체현되어있는 사상적의미 가운데는 그 생활 현상자체를 지배하며 이여의 사상적 의미를 제약하는 가장 본질적이며 규정적인 것이 있다. 생활현상에 체현되어 있는 본질적이며 규정적인 사상적 내용은 그 존재를 담보하는 근본의 요인으로, 기본 핵으로 된다. 바로 그 핵을 생활의 사상적알맹이라 한다. 종자는 사상적알맹이이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상과 구별된다. 종자는 리성으로뿐아니라 감성으로도 파악되고 정서적으로 공감되며, 론리적 사유만 아니라 형상적사유도 계발시킨다. 생활속에서 찾아내여 형상에 심어놓은 종자는 작품의 핵으로 된다. 종자를 작품의 핵이라고 할 때 그것은 종자가 모든 형상의 중심을 이루는 기본알맹이라는 것을 말한다. 종자가 작품의 핵으로 되는 근본 요인은 그것이 작품에 반영된 생활의 가장 심오한 본질을 체현하고있는 사상적 알맹이라는데 있다. 종자가 생활의 사상적 알맹이로부터 작품의 핵으로 되기까지의 과정이 바로 작가의 창작과정이며, 새로운 형상세계가 태어나는 과정이다. 창작에서 종자를 바로잡고 깊이 심는 문제는 작품의 운명을 좌우하는 근본문제로 제기된다. 종자를 바로잡고 그에 기초하여 형상의 꽃을 피워나가는 것은 문학창작의 생리로, 철칙으로 되어야 한다."

북한의 주체문학은 그들이 말하는 령도자 한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런 분위기를 잘 대변해주는 작품 하나를 소개한다. "학교의 리발사로인이 봄철 아침에 호수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데 때마침 봄꽃들이 흐늘어진 언덕길로 어버이 수령님께서 사색에 잠겨 걸어오신다. 어버이 수령님을 알아보고 기쁨에 리발사로인은 무릎을 철썩 친다.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저는 그저 학교 리발사입니다."(이하중략)치하와 축하를 아낌없이 베푸신다.

'이발사, 학교의 리발사라 -그이께서는 호수가를 거닐으신다- 좋은 일이요, 얼마나 기쁘겠소 매일같이 아이들의 머리를 만지며 볼을 쓸어주며 단장을 시켜주니! 나는 일이 바빠서 그러질 못하누만 우리의 미래, 우리의 후손들 보화로 찬 세상을 물려받을 아이들 꽃보다 곱고 귀하오! 그렇찮소 로인님은 장한 일 맡았소." 이야기를 마치고 떠나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건만 멋지게 콧수염을 비틀어올린 로인은 얼을 잃은 듯 오래오래 서서 혼자서 마음 속 독백을 한다. "사람마다 제 일을 자랑하지만어림없어, 리발사가 상으뜸이지" 한편의 담시가 전하는 사랑의 이야기이다. 주체문학은 이렇게 한 사람의 인간적 풍모에 매력을 느끼며 찬양일색의 작품들로 쓰여지는 것이 북한의 주체문학인 것이다. 평양에는 4·15문학창작단이라는 것이 있다. 이 문학단체는 작가들을 키우고 지원하는 실질적인 문학단체의 하나이다. 소개한 작품은 '기쁨의 담시'라고 한다. 40여 년 전의 작품이라고 한다. 북한의 문학은 온전히 그들 체제의 안정을 위해 쓰여지고 있다. 일인체제의 유지를 위해 모든 작품들이 창작된다. 시로 쓴 노래말 -가사-'철령의 철죽아' 강승제 시인의 작품을 소개한다. '붉게도 피었구나 철령의 철쭉아 눈내린 벼랑길에 야전차 밀어가신 장군님의 그 자욱 송이송이 수놓으려 굽이굽이 전선길에 망울을 터쳤구나 볼수록 뜨겁구나 철령의 철쭉아 병사들 보고싶어 험한 령 넘나드신 장군님의 그 사랑 저 하늘에 새기려 삿갓봉 구름우에 향기를 실었구나 천만년 만발하러 철령의 철쭉아 선군의 총대로 푸른하늘 펼쳐주신 장군님의 그 위업 길이길이 전하며 군민의 마음속에 새봄을 꽃피우리' 그들이 매일 내는 로동신문의 첫 장은 대대적인 인민군들의 사진으로 시작한다. 그 가운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항상 서 있다. 그것이 북쪽을 지배하는 선군정치의 모습인 것이다.

북한의 문학은 우리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먼저 그들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왜 이렇게 주체문학은 일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문학을 동원하는지 모든 작가들이 그 길로 매진하는지 알 수가 없다. 평양의 작가들과 첫 만찬 장에서 백두산 들쭉술을 마시며 통일을 해야한다고 말하던 젊은 시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남쪽이 잘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평양의 젊은 작가들은 만남의 첫 만찬에서 뜨겁게 다가왔다. 손을 맞잡고 끌어안으며 얼굴을 마주했다. 그 순간 사상과 이념을 뛰어넘는 사상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남과 북 분단문학의 60년 벽이 무너졌다.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로 평양과 서울의 작가들이 하나가 되었다. 이제 그 날의 감격을 안고 사는 것이 아니라 북쪽의 작가들의 어려운 삶을 이해하고 남북문학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문학을 통한 교류를 해야 통일은 가깝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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