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니 빠진 중강새 우물가에 가지마라
앞니 빠진 중강새 우물가에 가지마라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7.07.2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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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언제부터인가 아래 앞니 사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치과를 찾으니, 어금니가 없어 치아가 서서히 밀려 사이가 벌어지고 있으니 임플란트하거나 부분적 틀니를 해야 한단다. `틀니'라니, 순간 미간에 주름이 가고 머릿속으로 찬바람 인다.

강산이 몇 번 변한 그 시절, 충치가 생기면 치료보다는 아픈 고통 때문에 이를 뽑는 게 상책이었다. 유약했던 그때 유독 형제 중 잔병치레를 많이 했던 난 치아까지 늘 말썽이었다. 병원도 약국도 흔치않았기에 충치가 생겨 쑤시고 아프면 병원이 멀고 귀하다 보니 부모님들은 민간요법에 의존했다.

어느 날 밤, 치통으로 온 집안이 난리가 났다. 민간요법으로 썩어가는 이에 치약을 짜 연고 바르듯 잔뜩 발라 보기도 하고, 쑥을 입에 물어보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자 마늘을 구워 이에 물고 있으며 통증을 완화한다 하여 물고 있었다. 설구운 마늘을 물자 얼마나 맵고 얼얼하지 눈물, 콧물이 흘러내렸다. 밤새 장지문을 잡고 끙끙거리며 날이 밝기만 애타게 기다리다 새벽녘에야 겨우 새우잠을 잤다. 이튿날 범상치 않은 몰골 잇몸이 붓고 심한 통증으로 입 주변까지 벌겋게 벌에 쏘인 듯 퉁퉁 부어올랐다. 뒤늦게 병원을 찾았으나 잇몸 부기가 가라앉아야 치료가 된단다. 겨우 약봉지 하나 달랑 들고 허리가 휘어진 갈대처럼 고개를 떨어뜨리고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어쩌다 퉁퉁 부어오른 아픈 이를 건들기라도 하면 온몸이 자지러지는 그 통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앓던 이를 뽑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었지만 그 결과 현재 양쪽 어금니가 없다. 어찌하다 보니 하세월동안 무심하게 지낸 나, 나이가 들면서 앞니가 밀리면서 사이가 벌어지면서 뒤늦게 치과를 찾은 것이다. 그럼에도 고가치료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치과 문을 슬그머니 밀고 나서는데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어른거린다. 행복도 손끝에 있고 슬픔도 손끝에 있다고 하더니 왜 그런지 서러움이 가슴속을 파고들면서 가슴에 촉촉한 이슬이 내린다.

마지노선을 달리는 치아를 보면서 입가에 왠지 모를 씁쓸한 미소가 그려지고 연거푸 마른 세수를 했다. 자식이 뭔지 치아가 고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치아교정기를 하고 있는 아들, 만만찮은 가격임에도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뜻 수락했다. 어디 치아교정이 한 두 달 안으로 마무리되는 것인가. 오랜 시간과 관리를 투자해야 한다. 매월 치과 방문하여 교정기상태 및 특수칫솔로 특별양치질을 해야 하고 구강세정제를 이용하여 가글까지 해야 한단다. 부모의 마음과 아랑곳하지 않고 수시로 거울 앞에서 자신의 치아교정기를 바라보면서 만족하고 있는 아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했나 보다.

선조들은 치아를 오복 중의 하나라 했다. 제아무리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다고 해도, 치아가 좋지 않으면 음식을 꼭꼭 씹어 먹지못해 위장에 무리를 줌에 따라 건강에도 좋지 않기 때문에 치아를 오복이라 했을 것이다. 그런 오복의 하나인 치아가 알 빠진 옥수수처럼 허방이 되어버린 아랫니가 오늘따라 유난히 넓어 보인다.

한 줄금 바람이 지나간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그 노래 `앞니 빠진 중강새 우물가에 가지마라 붕어새끼 놀란다.'그때는 큰 소리로 부르면서 참 즐거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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