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즐기기
여름 즐기기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7.2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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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무더위가 지속되는 한여름에는 사람이고 짐승이고 할 것 없이, 정갈한 모습을 잃지 않고 체통을 지키며 사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의복은 땀에 젖기 일쑤이고 몸은 지쳐서 동작은 굼뜨고 얼굴에는 생기가 사라지고 지친 모습이 역력해지기 마련이다.

식물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이 중에도 예에가 있으니 연(蓮)이라는 식물이 그것이다. 연은 무더위를 만나면 잎과 줄기와 꽃이 모두 아연 생기를 띤다. 더위를 식혀주는 물에서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리라. 당(唐)의 시인 황보송(皇甫松)은 연꽃이 생기발랄하게 핀 모습을 시폭에 담고 있다.


연 따는 아가씨(采蓮子)

菡萏香連十頃陂(함담향련십경피) 연꽃 향기 드넓은 연못(陂)에 가득한데
小姑貪采蓮遲(소고탐희채련지) 소녀는 노느라 연 따는 일은 더디네
來弄水船頭濕(만래농수선두습) 저물도록 물장난에 뱃전이 젖었으니
更脫紅裙鴨兒(갱탈홍군과압아) 붉은 치마 갈아입고 오리 잡으러 가네

 

한여름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어, 만물이 지쳐서 힘든 기색이 역력한데, 유독 무더위를 반기는 것이 있었으니, 연꽃이 바로 그것이다. 무더위가 반가운 연꽃이 드넓은 연못을 꽉 채우고 있는 가운데, 그 향기가 사방에 진동하니, 여름의 생기발랄함은 여기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연이은 더위에 체통마저 지키기 어려운 사물들에게 연꽃은 부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연꽃을 부러워하기는커녕, 연꽃 못지않은 생기발랄함을 자랑하는 소녀가 연꽃 사이를 누비며 놀고 있었다. 이 소녀는 본디 이제 막 영글기 시작한 연밥을 따오라고 집에서 보냈는데, 아직 철이 모르는지라 연꽃 사이를 누비며 물놀이 하는 일에 푹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날도 더운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밥을 딴다면 이는 더 이상 철부지 소녀가 아닐 것이다. 놀다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저녁 무렵까지 뱃전이 흠뻑 젖도록 놀고 난 소녀의 머릿속은 여전히 또 다른 놀이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집으로 돌아가면 붉은 치마로 갈아입고 오리 잡이 놀이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무더위가 반가운 연꽃과 연꽃 사이 물놀이가 즐거운 소녀를 통해 시인은 여름의 생기발랄함을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덥다 덥다 하면 더 더운 법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여름 무더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말이다. 연밥을 따오라고 했더니 물놀이에 정신을 빼앗긴 소녀에게 더위는 더 이상 피할 대상이 아니다. 도리어 놀이의 대상인 것이다. 철없는 소녀의 행동에 여름 나는 지혜가 듬뿍 배 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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