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이중성
빛의 이중성
  •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07.2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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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성경의 창세기 첫 구절에 나오는 말이다. 우주 창조의 원인이고 만물의 모습을 드러나게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들어내지 않는 참으로 묘한 것이 빛이다. 빛으로 세상을 보지만 정작 우리는 빛을 보고 있을까?

역사적으로 빛의 본질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었다. 뉴턴은 빛이 알갱이로 되어 있다고 했고, 호이겐스는 빛이 파동이라고 했는데, 아인슈타인은 다시 빛이 입자라고 했다. 그렇다면 빛은 입자인가 파동인가?

만화책만 보던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반드시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착한 사람, 다른 하나는 나쁜 사람이다. 착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거나 착하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인물은 없다. 그래서 만화책만 보던 아이는 이 세상은 모두 착한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아이가, 세상이 정말 그런지 알아보기 위해서 광화문 네거리에 나갔다. 아이는 한 사람이 거지에게 돈을 주는 것을 목격했다. “옳지, 착한 사람!”그리고 또 길을 가다가 보니 한 사람이 휴지를 길에 버렸다. “옳지, 나쁜 사람!” 온종일 다녀 보면서 역시 세상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되어 있다는 자기의 가설이 옳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어떤 사람이 거지에게 돈을 주고 한참 가다가 길에 휴지를 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저 사람은 착한 사람이야, 나쁜 사람이야?” 이 아이는 고민에 빠졌다.

20세기 초 양자역학이 태동하던 무렵 과학자들은 이 아이가 빠진 것과 아주 동일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다만 다른 것은 인간이 아니라 빛이었다는 점이다.

세상 만물은 입자 아니면 파동이다. 돌멩이나 원자는 입자다. 하지만 소리는 파동이다. 자연현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입자이거나 파동이다. 그렇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는가? 이것이 과학자들의 믿음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빛은 입자나 파동, 둘 중의 하나이어야 한다.

빛이 직선으로 나아가고, 무엇에 부딪치면 반사를 하고, 유리나 물을 통과할 때 굴절하는 것을 보고 뉴턴은 빛을 입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빛은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서 가고, 빛이 서로 만나면 간섭을 해서 무지개와 같은 색깔이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빛이 파동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맥스웰에 의해서 빛이 전자기파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빛은 파동이라는 것이 확실해 졌다.

하지만 빛은 쉽게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는 호락호락한 존재는 아니었나 보다. 빛을 금속에 비추면 금속에서 전자가 튀어나온다. 이 현상을 광전효과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빛이 입자라는 가설로 광전효과를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이 공로로 그는 노벨상을 받았다. 빛은 회절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파동인데 또 광전효과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입자다. 그러면 도대체 빛은 입자란 말인가 파동이란 말인가?

과학자들도 만화책만 보던 아이와 같은 혼란에 빠졌던 것이다. 다만 사람이 아니라 빛으로 바뀐 것뿐이다. 빛은 빛일 뿐이다. 상황에 따라 파동처럼 보이기도 하고 입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 상황에 따라 착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나쁜 행동을 하기도 하듯이 말이다.

선과 악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일 뿐이듯이, 입자와 파동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가공적인 관념이다.

세상에는 악인도 없고 선인도 없듯이 세상에는 입자도 없고 파동도 없다. 인간은 선인도 악인도 아니다. 그냥 인간일 뿐이다. 빛은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니다. 빛은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간단한 존재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존재, 그것이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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