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채마밭에는
어머니의 채마밭에는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7.07.2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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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어머니가 80여년 몸 붙이고 살던 고향집을 두고 우리 곁으로 오셨다.

떠나오시려니 마음 아파 반 마음은 걸어두고 오셨다. 가난한 끼니 상을 앞에 놓고도 배부르다 웃었던 그곳을 어찌 두고갈까 밤을 새워 우셨는지도 모른다. 오시는 내내 돌아보고 또 돌아보셨는지 모른다.

작은 집을 구했다. 집 앞에는 채마밭 하나가 딸려 있고 뒤에는 숲이 초록병풍처럼 서 있다. 채마밭은 여러 해를 묵어 뭉친 흙더미와 잡풀이 무성했다. 잠깐 기계의 손을 빌렸더니 어머니 굽은 등을 닮은 밭고랑들이 맨살을 드러냈다. 모두 고랑을 타고 들어가 그 부드러운 흙살을 만져보고 한 움큼 바람에 날려본다. 어머니의 땀으로 얼룩진 고향의 흙냄새를 기억해낸다. 바람이 허무의 소망을 싣고 훌쩍 떠나버린다.

숲에는 크고 작은 생명이 매일 바쁜 삶을 논하고 있다. 살집 통통한 뱀이 스멀스멀 풀섶을 헤집고 나오고 밭둑 길, 산기슭에 오디와 산딸기가 지천이다. 밤새 염치없는 고라니가 연한 고춧잎만 똑 따먹고 산속으로 잰걸음을 친다. 야단법석을 떨던 개구리는 아침이 오면 무논에서 유유자적 노닐고 있다. 며칠을 지켜보아도 밤에만 유난스레 울어대는 이유가 궁금하다. 뻐꾸기 소리로 아침을 열면 참새와 까치, 산꿩이 제 식솔들을 달고 와 산밑 채마밭을 훔치고 있다.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부의 여유가 하루를 열고 있다. 어머니는 떠나온 고향을 보시고 나는 아홉살적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다.

채마밭에 모인 살붙이들이 흥분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흙냄새를 맡으며 마음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아했다. 어머니도 떠나오시며 채마밭에 심을 씨앗을 봉지, 봉지 담아서 오셨는데 이곳에다 고향을 심으려 하셨나 보다. 씨앗을 뿌리고 갖가지 모종을 사다 심었다. 밭둑까지도 넘치도록 심어놓고 보니 채마밭은 그 모두를 기꺼이 수용한다. 어머니처럼.

어머니가 웃고 계신다. 고향을 심고 계신다. 나는 저 많은 식구가 서로 의지하며 잘 살아 내줄지 걱정이다. 부실한 놈 기죽지 않고, 튼실하게 잘 자란 놈 되바라지지 않고, 모난 놈 여기저기 생채기 내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잘 살아 주었으면 좋겠다.

달포를 넘어서자 채마밭에 온 종일 수다가 늘어지고 있다. 제구실을 하느라 옆구리에 새끼들을 두 서넛은 달고 있다. ‘오호라! 울 어머니의 사랑을 먹고 잘도 커가고 있었구나. 솜털 보송한 오이가 잎사귀 밑에서 쏘옥 얼굴을 내밀고 방긋이 웃는다. 삼칠일을 넘어서자 연둣빛 상큼한 몸매로 식구들을 불러 모은다. 살근거리던 가지는 허리춤에 숨어 새치름히 웃고 있다. 꼭 부끄럼 많은 아이 엄마 치맛자락 잡고 웃는 수줍은 웃음이다. 수세미가 아기 팔뚝 길이로 자라서 대롱대롱 허리춤에 매달려 있다. 더 많이 크기 전에 어미가 바쁘다. 안간힘으로 줄을 붙잡고 오르는데 휘감아치는 손이 바람에 파르르 떨린다. 코에서 쇠똥 냄새가 난다.

이 많은 식구가 어머니와 사이좋게 살고 있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디밀고 눈인사를 하는데 초순에 달 굵듯 이슬아침에 오이 굵듯 한다.

울 어머니의 채마밭에는 웃음소리가 꽃을 피우고 있다. 주렁주렁 사랑이 매달려 있다. 어떤 것을 따 먹어도 어머니의 냄새가 난다. 희한하다 그 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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