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정체성 찾기
멈출 수 없는 정체성 찾기
  • 배경은<청주노동인권센터>
  • 승인 2017.07.1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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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배경은<청주노동인권센터>

어릴 적, 유난히 작고 허약한 나는 겨울이면 온몸에 침을 맞곤 했다. 작은 바늘 같은 것으로 몸의 혈을 자극하는 침술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뭐 그닥 아프지도 않았는데 지레 겁을 먹고 도망 다니다 아빠께 붙들려 침방으로 끌려갔다. 홀딱 벗겨진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은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몇 년을 그렇게 하고 나니 골골하긴 해도 그럭저럭 나는 무럭무럭 자랐다. 몸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음은 또래에 비해 조금 빨리 자랐던 것도 같다. 허약한 내 몸으로 친구들의 에너지를 따라갈 수 없기에 집에 틀어박혀 읽었던 세계명작동화가 내 영혼 성숙에 열 일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작한 자기 관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은 지금까지도 생애의 화두가 되고 있다. 정작 내가 누군지 알고 난 뒤엔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나만 관찰하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 버렸다. 여자는 태생부터가 소수자로 분류된다. 요즘엔 소수자의 개념이 확대되어 사회적 모든 약자를 소수자로 칭하기도 한다. 얼마 전, `런던 프라이드'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보면서도 느낀 것은 드러나지 않은 소수자가 이 땅엔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동질감과 공감이었다.

소수자의 생은 편견과 비판의 신작로를 걸어가야 하는 부담의 길이다. 영화의 주인공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영국 광부들의 최장기 파업을 지지하고 돕고자 결의하지만 정작 광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내가 아무리 어려워도 더러운? 돈을 받지는 않겠다.'는 넘사벽의 편견은 엉뚱한 곳에서 깨지면서 연대가 무엇인지 보여 준 실화다. 연합하여 아름다움의 연대가 발현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으나 신파로 흐르지 않은 영화는 유쾌했다. 또한 어떤 무엇으로 살는지 그 삶을 결정하는 것은 순수하게 자신의 몫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는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되고 외면당하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광부의 아내가 그렇고 페미니스트의 등장이 그렇다. 배척당하는 소수자의 가장 큰 고통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들어낼수록 누구와도 허심탄회하게 소통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막말로 원래부터 이렇게 생겨먹어서 무엇을 잘못하지 않아도 받아야 하는 성체성의 혼란으로 인한 죄책감은 세상과의 차단을 경험하게 되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연대와 협치는 지금의 개인주의적인 성향들이 극대화되고 있는 사회에 꼭 필요한 덕목으로 보인다.

내가 근무하는 노동인권센터에서는 지난 4월, 특성화, 전문계 고등학교 실습생들의 처우보장을 위해 도 충청북도 교육청 앞에서 한 달 동안 1인 시위를 했다. 사실 청소년은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며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청소년이 상당수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특성화, 전문계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자기용돈벌이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노동현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권리와 정체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다행히 문제의식을 느낀 도교육청에서는 특성화, 전문계 학교를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하기로 약속했다.

정체성은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이름 지워주고 함께 공유해야 하는 공동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종교적, 정치적 이념을 초월하여 서로의 존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는 아무리 팍팍한 현실로 힘들지라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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