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7.07.18 17: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존재의 소중함은 부재일 때 느낄 수 있다.”

이 문구가 왜 그리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걸까. 이제는 더 이상 어머니를 뵐 수도 없다는 생각에서 일까.

언제든 찾아가면 밝게 웃어주시던 어머니였다. 언제나 내 곁에 영원히 계실 줄 알았다. 그런데 이별은 예고도 없이 세월이라는 시간과 함께 그렇게 들이닥쳤다. 서로 마음을 정리도 하지 못하게 말이다. 그래도 어머니가 떠나시고 몇 년을 잘살아왔는데 오늘은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요즘은 별식이라고 하는 나물죽이 어린 시절 나는 정말 싫었다. 쌀은 보일까 말까 하고 나물만 잔뜩 넣은 죽을 여름이면 거의 매일 먹다시피 했다.

어쩌다 비빔밥을 해 주시던 날이 있었다. 그때도 물론 나물이 밥을 덮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죽이 아닌 보리밥이라 그런지 맛있었다. 보리밥이라고 해야 겉보리를 삶은 거칠거칠한 밥이었지만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4남매의 숟가락은 양푼 속에서 전쟁을 벌이곤 했었다.

어머니는 그때 우리가 아플 때만 해 주시던 음식이 있었다. 지금은 서민의 음식이라고도 하고, 인스턴트 음식이라 하여 비만의 주범인 `라면'이었다.

시골에서는 귀해서 라면만 삶아 먹는 집이 없었다. 라면 한 봉지에 국수를 잔뜩 넣어 먹곤 했는데 어머니는 자식들 중 누구라도 아프면 언제나 귀한 `라면'을 끓여주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 그날은 수업이 늦게 끝나 저녁도 못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은 마음에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친정집으로 차를 돌렸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시다 까무룩 졸고 계셨는지 문 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셨다.

하지만 이내 꼭 안아주시며 환하게 웃으시고는 저녁은 먹었냐고 하셨다. 어머니는 왜 저녁도 못 먹고 다니냐며 퉁망을 주시더니 부엌에서 냄비에 라면을 끓여 오셨다.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어머니 `라면'의 비밀을…. 물을 얼마나 많이 넣으셨는지 면은 둥둥 떠 있고, 국물은 아주 싱거운 라면 탕을 끓여 온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도 어머니는 분명히 이렇게 라면을 끓여주셨을 터인데 왜 그리 맛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오래된 기억 속의 `라면'은 어머니의 자식 사랑을 보여준 최고의 음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밥'하는 어머니들을 울린 사건이 있었다. 모 국회의원이 학교 급식 조리사들의 파업에 대해 `그냥 동네 아줌마'라며 폄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아픔을 달래고 위로해 주어야 마땅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거리에 나와 외치는 것일까를 먼저 알아보고 살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급식을 못 먹어 힘들어야 할 아이들은 즐거워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곳이 시골이라 그런지 엄마가 싸준 도시락도 좋고, 때로는 김밥이나 편의점에서 사먹는 음식도 맛있다며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급식 조리원들을 `그냥 동네 아줌마'로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는 먼 데 있지 않다. 아이들에게 학교 조리원들은 건강하고 맛있는 `밥'을 해주시는 고마운 분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보다 소중한 보물은 없다. 때문에 낮고 어두운 곳에서 우리의 `보물'들인 아이들을 위해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의 고충을 살피는 것이 국민의 손으로 뽑힌 분들이 해야 할 중차대한 일일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아이들이 급식 조리사분들의 소중함도 느끼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