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 천재지변과 인재의 사이
물난리, 천재지변과 인재의 사이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7.07.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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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글 쓰는 사람에게 이처럼 아주 상투적이고 일반적인 관용어를 대신할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경우처럼 곤혹스러운 일은 없다.

극단의 상황을 보다 적나라하게 전달하고 싶은데 더 이상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한계 상황.

이번 충북도내 일원의 홍수는 긴 가뭄의 시름을 앓던 와중에 느닷없는 물 폭탄 세례가 더해지면서 충격의 크기를 더하고 있다.

일요일이던 그날 아침, 나는 평소의 휴일 습관대로 새벽 5시쯤 정북토성이 있는 정봉 들판으로 나섰다. 그때만 해도 간간이 내리는 보슬비가 심상치 않더니 1시간 남짓 걷는 사이, 우산을 제대로 들고 있지 못할 만큼의 물 폭탄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좁다란 하천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물이 거대한 괴물처럼 꼿꼿하게 선 채로 달려들며 제멋대로 세상을 유린하는 것을. 발산천 낮은 다리를 넘긴 물은 함부로 마을을 침범하고, 나는 허리까지 차오르는 (사람이 다니는)길을 덮친 물을 뚫고 높은 자동차전용도로로 겨우 피신하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겨우 서너 시간에 불과한 사이 양동이로 쏟아 붓듯 내리는 폭우에 속절없이 당한 인간은 결국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 지방정부 역시 22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에 어찌할 수를 내놓을 방법은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입장이다.

그럼에도 나는 벌써 20여 년 전 기자였던 시절 충북 보은과 단양 등지의 수해현장을 취재하면서 목격한 `인재'의 참담함이 여전함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에도 국지성 폭우는 물난리의 첫 번째 원인이었다. 그러나 시궁창 냄새가 코를 찌르는 수해 현장의 터져 나간 둑은 대부분 마을 가까이의 다리 부근. 다릿발(교각 橋脚)에 걸린 수많은 부유물과 (토지자본을 얻기 위해)하천 폭보다 급격히 좁아진 다리를 만든 인간의 욕망을 물은 어김없이 무너뜨리며 경고하고 있었다.

이번 물난리 역시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고 변명하고 싶은 사이, 우리는 20세기를 지나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으며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되풀이되는 `인재'의 원망은 아득하다.

시골마을은 시골마을대로 사람의 손길이 함부로 들쑤셔댄 자연 주변의 옥답과 보금자리가 유린당했고, 도시는 도시대로 날씬하게 포장도로와 지표면 아래로 숨겨둔 복개천이 이번 물 폭탄의 습격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나무와 풀들을 모조리 뽑아 버린 택지개발지구 인근의 도로는 어김없이 흙탕물에 잠기고, 그곳에는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온갖 기계들이 가라앉거나 둥둥 떠다니고 있다.

물은 참 빨리도 흐른다.

다음 날 아침. 무심한 하늘을 원망하며 숨죽였던 무심천의 위험은 가시고, 수마에 휩쓸려온 인간의 잔재들이 함부로 쑤셔 박혀 있는 처참함은 비극이다.

그동안 우리는 유수(流水)와 같은 세월을 한탄만 해왔다. 물 폭탄을 뒤집어쓴 재해안전지역의 허심을 버리고 이제라도 쏜살같은, 폭탄 같은 천재지변에도 끄떡없을 수 있도록 대비를 해야 한다.

물에 잠겼던 살림살이를 결국 물로 씻어내야 하듯 정상적인 살림살이를 하도록 회복을 위한 복구 작업 역시 너나없는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더불어 이번 물난리를 계기로 사람들이 더 이상 제멋대로 자연을 유린하는 탐욕도 함께 씻어지기를 바라는데… 이게 과연 가능할까.

결국 하늘이 아닌 사람이 참 무심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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