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
아픈 역사
  • 신금철<수필가>
  • 승인 2017.07.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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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신금철

친구들끼리 1박 2일의 일정으로 대마도 여행을 계획하고도 여행지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그리 크지 않았다. 마치 집에서 거리가 먼 국내의 여행을 가는 느낌이었다. 단지 친구와 함께 1박을 하며 다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 기분이 좋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부산에서 대마도행 배를 탔다. 배를 탄 사람들이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이어서 낯설지 않아 마음이 편안했다. 친구와 밀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대마도에 도착하였다.

우리나라 섬에 온 듯, 첫 여행의 느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먼저 다녀간 지인들의 말을 들은 탓에 호기심은 별로 없었지만 가이드의 첫 설명이 감정을 자극하였다.

대마도는 일본의 본 섬 보다도 우리나라와 더욱 가깝다. 과거 우리나라 땅이었다는 대마도는 부산에서 겨우 49㎣ 떨어진 섬이다. 선조가 90%의 산지山地인지라 사람이 살 수 없음에 대마도를 무관심하게 버려두었고, 임진왜란 이후 일본 땅으로 기울어졌단다.

대마도가 `조선 영토'라는 것은 세계지도나 일본지도에도 많이 표기되어 있다 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화 되고부터 우리 땅이라고 대항을 못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이 환원을 제의했고, 그 이후 60여 차례나 주장을 하다 6·25 사변으로 중단되어 영영 일본 땅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대마도를 일본에 빼앗긴 것만도 억울한데 독도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더 이상 우리 땅을 빼앗기는 불행한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에 야릇한 분노가 일었다.

이런 슬픈 역사를 들으니 대마도가 눈에 확 들어왔다. 대마도는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시골 분위기였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의 해수욕장, 원시림처럼 느껴지는 아름드리 삼나무의 울창한 나무 숲, 대마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크고 작은 섬이 만든 해안 절경 등을 보니 빼앗긴 땅이 너무도 아까웠다.

덕혜옹주가 소 다케 유키 백작과 결혼하고 들렀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앞에서는 마음이 숙연해졌다. 얼마 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덕혜옹주'를 보며 많은 사람이 눈물 흘리며 역사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책을 통하여도 읽은 `덕혜옹주'는 한 여인의 슬픈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우리 모두의 슬픈 이야기이다.

귀한 대접을 받으며 곱게 자란 왕녀로 낯선 땅에 끌려가 눈물 흘리며 슬픔의 나날을 보냈을 덕혜옹주를 생각하니 가엽기 한이 없었다.

대마도 여행은 기대보다 느낌이 컸다.

대마도를 빼앗기지 않았더라면 하늘을 치솟는 아름드리나무만도 엄청난 경제 효과를 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힘이 없는 나라이기에 당해야 하는 설움은 여전하다. 사드문제로 온 나라가 힘든 것은 나라가 분단된 아픔 탓이겠지만 아직은 우리나라가 힘이 부족한 데서 오는 설움이다. 우리 스스로 국방을 해결할 수 있다면 강국의 힘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어처구니없이 나라의 땅을 빼앗기지도 않을 것이다.

힘이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치를 하는 분들이나 경제를 살릴 분들이나 국민이 모두 힘을 모으고 마음을 모아야 할 때이다.

대마도 여행의 아쉬움은 한동안 지속하였다. 지금도 대마도 여행의 기억은 즐거움보다 `아픈 역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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