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과 언제까지 견뎌야 하나
이런 사과 언제까지 견뎌야 하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07.16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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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것도 기자들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국민을 향해, 고개를 땅에 박을 것처럼 숙여가면서 말이다. 요즘은 하루건너 한 명꼴이다. `세상이 선해지려는 모양이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제는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기자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예사로 했다는 욕설과 상말을 사과했다. 그는 취미생활 즐기듯이 운전기사를 언어로 학대했다. 아들뻘 되는 기사의 부모까지 모욕한 대목에서는 비애감마저 들었다. 그의 혀에서 발사된 독침을 맞고 불과 1년 새 3명의 기사가 회사를 떠났으나 사과는 3분 만에 끝났다.

그 직전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국민에게 사과했다. 지난 대선에서 상대 후보를 공격하면서 제시한 녹취록이 가짜라는 사실을 밝히고 당이 사과한 지 무려 16일이 지나서였다. 자신의 당선을 목적으로 당원이 조작한 증거가 선거전에 동원된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측근이 구속될 때까지 함구로 일관했다. 그는 사과하며 모든 짐을 자신이 지고 가겠노라고 했지만, 그 짐을 어떻게 지고 어디로 갈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가던 길을 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같은 당 이언주 의원도 비슷한 시기에 사과했다. 파업에 나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바하한 발언 때문이었다. 이 의원의 사과 역시 공감을 얻지 못했다. 구구한 변명이 사과의 진정성을 삼켜버렸다. 기자와의 통화를 사적 대화라고 강변하는 억지는 한낱 필부의 인식에도 미치지 못했다.

인사청문회는 등장하는 사람마다 고개를 숙이기에 급급한 `사과'청문회가 된 지 오래다. 대통령이 적폐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열겠다며 후보 시절 강조했던 5대 인사배제 원칙은 순식간에 휴짓조각이 됐다. 대리사과라는 희한한 형식의 사과도 탄생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민의당을 찾아가 여당 대표의`머리 자르기'발언을 대신 사과했다. 사과라는 행사가 일상이 돼 똥값이 됐는데도 이런 대리사과가 효력을 발휘해 국민의당이 즉각 입장을 바꾼 점이 화제였다.

사과는 넘쳐나지만 사과다운 사과는 접하기 어렵다. 사과는 최소한 3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타이밍이 적절해야 하고 진정성을 담아야 하며, 조건이 없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이런저런 변명으로 도망 다니다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하는 사과가 태반이다. `선의로 한 일이지만',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따위의 토를 달아 사태를 악화한 경우도 허다하다.

문제는 범람하는 사과들이 아무런 교훈을 낳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사청문회장에서의 사과 행진은 제도 도입 당시와 비교해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 위장전입, 논문표절, 부동산투기, 다운계약 등 메뉴들도 그대로다. 대기업 오너의 갑질도 그렇다. 지난 2014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켜 당사자가 눈물로 사과하고 구속되는 호된 대가를 치렀으나, 폐습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감은 물거품이 됐다. 이후에도 갑질 오너들의 횡포와 사과는 그치질 않았다. 최근만 해도 피자업체와 치킨업체 대표가 차례로 머리를 숙였고, 이들이 남긴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종근당 이 회장이 또 일을 냈다. 그의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 악순환의 되풀이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경고로 읽혀진다.

사실 사과란 좁은 골목길을 오가던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거나, 어느 집 개가 옆집 대문에 오줌을 쌌을 때나 하는 일이다. 음주운전이나 위장전입 같이 엄연한 현행법을 위반하거나 남이 땀으로 일군 지적 재산을 도둑질한 행위 등은 사과가 아니라 사죄를 해야 할 사안이다. `갑'의 지위를 무기 삼은 모진 언사로 약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인격 살인 행위도 마찬가지다. 사과 한마디로 소나기를 피했다가, `세월이 약이겠지요'를 읊조리며 여론이 망각기로 접어들 때를 기다리는 꼼수로 무마할 단순 일탈이 아니다.

많은 국민은 한 줌의 영혼도, 결과도 없는 전시성 사과에 이젠 신물이 난다. 그때마다 민중을 개·돼지로 불렀던 전 교육부 고위관료의 어긋난 의식이 되새김질 된다. 강자가 약자를 보듬는 상생의 사회를 지향해야 할 시대에 `강자가 약자에 사과할 일을 하지 않는 사회'를 숙제로 삼아야 하는 초췌한 현실에서 정부의 적폐청산 구호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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