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값
술값
  • 임형묵<수필가>
  • 승인 2017.07.1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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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형묵

평시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 입맛이 깔깔한 채 요기를 하고는 엘리베이터 벨을 누른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호사를 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조금만 걸으면 되는 거리인데도 자동차를 고집한다. 쾌적한 주거환경, 생활밀착형 가전제품과 도구의 편리성에 익숙해 조금만 힘들거나 귀찮아도 몸은 거부반응을 보인다.

택시를 부르거나 버스를 이용해 오근장역까지 갈 수 있는데도 귀찮아한다.

예전에는 술을 먹고도 걱정하지 않았다. 전날 먹은 그 정도 양의 술이라면 목적지인 제천까지 차를 끌고 갈까 말까 갈등하지 않았을 것이다. 술 먹고 나 머리가 묵직하다느니, 속이 아프다느니 하는 염려도 없었을 것이다. 남에게 게슴츠레한 눈빛을 보일 리 없고 속 쓰림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음주단속에 걸리는 순간 얼마나 허탈할까. 야구경기에서 좋은 흐름을 이어가다 타자가 친 공이 수비하고 있는 삼루수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가 삼중살을 당해 그날의 시합을 망칠 때처럼 음주 운전은 한순간에 그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한다. 만에 하나 타인의 신체를 상하게 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면 그동안 쌓아 올린 공든탑을 단박에 무너트리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공직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성실의무와 품위유지 위반으로 징계까지 감수해야 한다.

음주로 인한 금전적인 손해도 만만치 않다. 과태료 말고도 수리비에 보험료 할증에 합의금도 상당하다. 공직자의 경우에는 인사, 복지, 보수 등에서 처우가 달라지거나 상당한 불이익을 각오해야 한다. 하여 그 금액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 업무담당자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어림잡아 2000여만 원은 될 것이라고 하는 대답에 적지 않게 놀란 적이 있다.

그 돈이라면…. 실컷 술을 먹을 수 있고 평생 대리운전해도 남는다. 월급쟁이에게 2000만 원은 큰돈이다. 줄여 쓰고 모아도 적게는 1~2년, 많게는 3~4년 걸린다. 순간의 판단 착오로 헛돈이 나가니 얼마나 속이 상할까. 야구 선수인 타자가 밤낮으로 연습하고도 막상 시합에 나가서 헛방망이질할 때처럼 그동안의 노력이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모 그룹의 광고 문구가 떠오르는 아침이다. 그 회사는 그 광고로 인하여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렸다. 소비자들이 저절로 찾아들게 해 일류 기업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술은 평생 친구가 될 수 있지만 놓아줄 때 놓아줘야 한다. 한평생 끼고 다닐 수 없는 게 술이니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는 것도 이로운 일이다.

제천역에 다 왔다고 경적을 요란하게 울려도 앞좌석에 앉은 사람은 여전히 잠에 빠져 있다. 오근장역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 자세로 거의 반쯤 의자를 뉘인 채 잠들어 있다. 이렇게 잠에 깊이 빠진 걸 보면 이 사람도 기차를 타고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적지 않은 고민을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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