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
사람과 사람들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7.07.1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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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볼 때마다 부러워지는 연예인들이 있습니다. 배우 최불암과 가수 최백호입니다. 언제부턴가 그들이 눈에 쏙 들어오게 된 이유가 어쩌면 단순하게 보일 수도 있겠군요. 연극, 영화, 방송 등에서 직접 등장하지 않고 줄거리나 장면에 관해 해설하는 사람을 `내레이터(narrator)'라고 하잖아요. 그들이 제법 알려진 어느 지상파 TV 방송 프로그램의 해설자들로서 제2의 인생을 알차게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경우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해당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남다른 진행법이기도 합니다.

최불암과 `한국인의 밥상'에 대해선 2012년 3월 본지를 통해 `최불암론(論)'이란 제목으로 소회를 밝힌 적이 있었지만, 최백호와 `사람과 사람들'에 대해선 그런 적이 없었더군요.

어눌한 말투와 경상도 사투리식 억양, 게다가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내레이터로선 모자랄 수도 있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음에도 최백호는 롱런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 그만한 배경이 있어서 최백호가 잘나가는 것은 아닐 겁니다. 무엇이 매력일까 톺아보고 싶기도 합니다만, 상대가 누구이든 유명세를 휘두르지 않는 그의 털털한 모습만으로도 다가오는 게 많군요. 곧 일흔의 나이를 앞두고 있음에도 말이죠.

`사람과 사람들'이란 프로그램 이름도 한 몫 단단히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란 식으로 이름을 짓지 않고 `사람'이란 말과 `사람들'이란 말 사이에 `과'라는 둘 이상의 대상을 대등한 자격으로 이어 주는 접속 조사를 써서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혼자이든 여럿이든 상관없이 “나름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으로서의 스펙트럼을 활짝 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들'을 언급하다 보니, 스코트 모마데이(Scott Momaday)가 그의 소설 `새벽으로 만든 집(House Made of Dawn)'에 소개한 키오와(Kiowa) 인디언 부족의 구전(口傳) 노래가 떠오릅니다. 일부를 옮겨볼게요.

“기쁨에 겨워 나는 회복하나이다./기쁨에 겨워 내 속은 시원해지나이다./기쁨에 겨워 나는 앞으로 나아가나이다./속이 시원한 기분으로, 제가 걸을 수 있도록./다시는 상처 없이, 제가 걸을 수 있도록./아픔을 모르고, 제가 걸을 수 있도록./생동하는 기분으로, 제가 걸을 수 있도록./기쁨에 겨워, 풍성한 먹구름과 함께, 제가 걸을 수 있도록./기쁨에 겨워, 풍성한 소낙비와 함께, 제가 걸을 수 있도록./기쁨에 겨워, 풍성한 식물들과 함께, 제가 걸을 수 있도록./기쁨에 겨워, 꽃가루 길을 밟으며, 제가 걸을 수 있도록./기쁨에 겨워, 걸을 수 있도록./옛날에도 그랬듯이, 제가 걸을 수 있도록./내 앞에도 아름다웁고,/내 뒤에도 아름다웁고,/내 밑에도 아름다웁고,/내 위에도 아름다웁고,/내 주변이 온통 아름다울 수 있도록./아름다움 안에서 완성되나이다.”

살아가는 동안 모든 사람들을 만나볼 순 없지만, `사람과 사람들'에 나오는 사람들을 통해서 다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두런두런 들을 수 있다는 게 무척 기쁩니다.

언젠가 `사람과 사람들'을 보다가는 정원디자이너인 아내를 돕는 어떤 분이 취미로 만들었다는 나무 식판에 적어 놓은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라는 말은 잊혀지지 않는군요. “좋아서 두고 보려 했더니 꽃 아닌 것이 없더라.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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