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의 민낯
장터의 민낯
  • 안희자<수필가>
  • 승인 2017.07.13 2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안희자

태양이 이글거리는 정오, 시골 장터를 어슬렁거린다. 장날마다 천천히 발품 팔아가며 장터를 둘러보는 일이 흥미롭다. 다양한 먹을거리며 볼거리, 사람들로 복닥대는 오일장 풍경에 깊숙이 빠져들면 정겨운 사람냄새가 오롯이 묻어난다. 장터 풍경만큼이나 사람 풍경 또한 다양하다.

단출한 식구에 장날마다 필요한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루를 여는 시장 사람들의 모습이 활기차고, 그들의 정겨운 목소리가 그리워서다. 가뭄에 타들어가는 논바닥에 물을 주듯 시들어가는 삶에 활력을 얻기 위해 나왔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장터는 소란스럽고 분주하다. 타지에서 와 짐을 부린 상인들은 하루의 꿈이 열리는 기대감에 부풀고, 장 구경을 나온 사람들은 값싼 물건 고르느라 눈과 귀가 바빠진다. 먹는 즐거움은 또 어떤가. 정오쯤이면 순대국밥 집에서 구수한 냄새가 솔솔 올라오고, 나그네는 허기를 달래려 그곳으로 향한다. 구수한 순댓국 한 그릇에서 고향 가득한 추억을 삼킨다. 식당 주인은 천장에 플라스틱 통을 고무줄로 매달아 놓고 정신없이 돈을 쓸어 담으며 웃고 있다. 박꽃처럼 순박하다. 도심에서 보기 드문, 시골 장터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다시 골목길을 나와 사슴처럼 목을 길게 빼고 걸었다. 파라솔 아래 생선장수는 “팔딱팔딱 뛰는 생선이 오늘 하루 반값이유!”라며 목이 터져라 외쳐댄다. 재빠르게 다가가니 좌판에 간고등어가 얼음을 베개 삼아 끌어안고 짭조름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달라고 손짓하자 그는 익살스럽게 금슬 좋은 놈으로 골랐다며 도마에 올려놓고 단번에 두 동강이를 낸다. 억척스레 열심이다. 삶이 고단할지라도 자신의 몫을 다하고 가족들에게 당당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희망일 터, 그는 또 장터를 떠돌며 푸르게 살아갈 것이다.

바로 그때, 내 옷자락을 잡아끄는 할머니가 있었다. 작년에 농사지은 것이라며 빨간 고추 자루를 내놓고 팔아달라고 간청한다. 돈이 궁해서 나왔다는 할머니. 활처럼 굽은 등과 거친 손마디에서 삶의 흔적이 배어나고, 주름진 노인의 얼굴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다. 흙과 씨름하며 땀 흘린 대가를 바라는 그 모습이 애처로워 외면할 수가 없었다. 값을 지불하자 노인은 덤으로 고추를 후하게 얹어주었다. 해거름에 공돈이라도 생긴 양 바삐 집으로 향했을 노인을 생각하니 홀가분했다. 노인은 또 그런 기쁨으로 또 시장에 나올 것이다.

산다는 건 하루를 장터에 저당 잡히고 팔고 사는 일이 아닐까. 우리네 삶도 장날 아침에 물건을 펴놓고 자신의 몫을`최선을 다해 팔아 저녁이면 대가를 보상받는 하루살이 장사꾼 같다. 나는 오늘 장터에서 발품 팔아 좋은 물건을 값싸게 샀으니 내 몫은 제대로 보상받은 듯싶다.

그러면 내 마음의 좌판에는 무엇을 펴놓고 팔아야 할까? 이득을 챙기기보다 훈훈한 정을 담아 좋은 물건을 값싸게 드리고 싶다. 최대한의 양심을 팔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이웃에게는 덤을 얹어주고 싶다. 인심이 좋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면 그것만으로 족하지 않은가.

삶이 무기력해질 때 장터로 나가보시라. 시들었던 마음은 금세 살아나고 그 언저리에 희망이 꿈틀댈 것이다. 대형마트가 널려 있어도 발품 팔아가며 장날을 찾는 것은 그곳에서만 맡을 수 있는 사람냄새와 진솔한 삶의 정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 그리운 날엔 사람들 복닥대는 오일장에 들러 후한 인심에 젖어보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