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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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1.2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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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가(安民歌)
윤 장 규 <충주고 교사>

한 전직 대학 교수의 부장판사 테러를 두고 논란이 많다. 한쪽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법부에 대한, 나아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며, 더구나 테러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명색이 대학 교수였던 사람이 오죽이나 답답했으면 그랬겠느냐는 동정론을 바탕으로 은근히 사법부와 이 정부에 대한 불신을 애써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한 일간지가 법원 판결 신뢰도에 대한 국민의 여론조사를 통해 밝힌 바는 22.4%의 사람들만이 '신뢰한다'고 답했고, 59.5%의 사람들은 법원 판결이 공정치 못해 신뢰하지 못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법부의 판결은 곧 이 국가의 판결인 것은 분명한 일이고, 사법부의 공정하고 올바른 판결이 이루어질 때 이 국가의 신뢰 또한 얻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지 싶다.

신라 향가 중에 '안민가'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내용은 충담사가 경덕왕에게 치국안민의 도를 권계하는 것이다. 그것을 현대어로 옮겨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임금은 아버지고, 신하는 어머니고, 백성들은 어리석은 아이라고 할 것 같으면, 백성이 사랑을 알 것입니다. 꾸물거리며 살아가는 생물 같은 백성들을 먹이고 다스려서, 백성들의 입에서 '내가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말이 나온다면 나라가 유지됨을 알 것입니다. 아,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할 것이면 나라가 태평할 것입니다.'

이 노래를 보면, 당시 시대가 어지러웠다는 것과 그런 국면을 어떻게든 전환해보고자 하는 군주의 고뇌를 대략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런 한편, 이 노래 속에는 은근히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군주와 신하의 상황이 내포되어 있음도 또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가 있다. 한 백성이 임금 앞에서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운운하고 있을 때의 임금의 표정을 생각해 보면 차라리 안쓰러운 생각도 든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전해져오는 것을 꼭 상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금 임금이 임금답지 못한 것인지, 신하가 신하답지 못한 것인지, 국민이 국민답지 못한 것인지 한 번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답지 못한' 것은 '국민'이라기보다는 '임금'이나 '신하' 쪽으로 기울어지는 심리는, 위에서 언급한 한 일간지의 신뢰도에 대한 보도 내용과 맥을 같이할 것이다.

황지우라는 시인이 과거 군사독재시대의 획일적인 가치가 지배하던 시대의 이 '삼천 리 금수강산'을 도저히 살 수 없는 땅이라고 인식하면서 '새들(마저)도 (이) 세상을 뜨는구나'라고 절망한 일이나, 또 다른 시인이 십여 년 전쯤 자정에 방송되던 뉴스프로그램인 '보도본부 24시'를 소재로 하여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꼭 보고를 받고 자야지'라고 술에 취해 말하는 형식으로 국민이 주인이라는 나라의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거세당한 울분을 토로했던 일 등은 작게는 국가의 한 기관이, 크게는 국가 전체가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일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천심은 하늘의 뜻이고, 하늘은 오래전부터 절대선의 기준이었다. 그래서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도 없다고 했다. 우리가 함께 오늘을 사는 것도 인연이라고 한다면, 이 시대의 누구도 하늘에 죄를 지어서 빌 곳도 없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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