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의 몸
감자의 몸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7.07.12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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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길 상 호

감자를 깎다 보면 칼이 비켜 가는
움푹한 웅덩이와 만난다.
그곳이 감자가 세상을 만난 흔적이다.
그 홈에 몸 맞췄을 돌멩이의 기억을
감자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벼랑의 억센 뿌리들처럼 마음 단단히 먹으면
돌 하나 깨부수는 것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뜨거운 夏至의 태양에 잎 시들면서도
작은 돌 하나도 생명이라는
뿌리의 그 마음 마르지 않았다.
세상 어떤 자리도 빌려서 살아가는 것일 뿐
자신의 소유는 없다는 것을 감자의 몸은
어두운 땅속에서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웅덩이 속에
씨눈이 하나 옹글게 맺혀 있다.
다시 세상에 탯줄 댈 씨눈이
옛 기억을 간직한 배꼽처럼 불거져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독을 가득 품은 것들이라고
시퍼런 칼날을 들이댈 것이다.

# 시인의 눈은 예리합니다. 감자의 움푹한 흔적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사유와 관찰의 힘은 생의 깊은 뿌리로 이어집니다. 땅속 깊은 어둠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자라는 일, 생명의 존귀함은 이처럼 경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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