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수국
두 얼굴의 수국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7.07.1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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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수필가>

농막의 여름은 수국의 꽃잔치다. 이 꽃은 수수하면서도 화려하고 소박해 보이면서도 나를 유혹한다. 무심히 지나치다가도 다시 발길을 붙잡혀 시시로 홀린다.

꽃집에서 여기로 이사온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질 줄을 모른다. 꽃은 피어서 열흘을 가지 못하는데 예외다. 처음에는 미색을 띠더니 얼마가 지나자 연두색으로 변했다. 하물며 하나의 가지에 각기 다른 색으로 피어 있다.

마법을 부린 듯이 색을 바꾸는 모습에 놀라 호들갑을 떠는 나에게 농막 주인은 그런 꽃이라며 대수롭지않은 답이다.

카멜레온은 환경과 온도에 따라 색의 변화로 주위에 적응한다.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일 터이다. 꽃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어 품종이 다른 것인 줄로만 알았다. 수국이 토양의 산도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흙과 비료의 성분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중성에서는 하얀색으로 산성에서는 파란색이 되고 알칼리성은 빨간색이 된다. 꽃에 있는 안토시안과 흙속의 알루미늄이온이 산성과 알칼리성에서 녹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수국의 꽃말은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변덕과 진심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여러 색으로 바뀌는 모습과 받아들이는 영양분에 바로 반응하는 데서 붙여진 듯하다. 꽃을 피워 세 번이나 색이 바뀌는 수국에서 정치인들이 보이는 건 왜일까.

자신이 유리한 당으로 시도 때도 없이 옮겨다니는 철새라는 그들을 수국으로 일컫고 싶어진다. 두 얼굴을 가진 꽃에서 나는 정치인들의 변덕스런 이면에 있을 진심의 얼굴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수많은 작은 꽃들이 모여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듯이 흩어지는 모습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커다란 힘이 되어 사회를, 나아가 나라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다.

내가 이 꽃에 매력을 느끼는 건 솔직함이다. 리트머스시험지처럼 곧바로 반응하여 나를 나타낼 줄 아는 당당함이다. 사람이라면 현명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친구나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동색으로 물들지 못하고 겉도는 나. 한 번 결정한 일은 번복하기 힘든 나로서는 이런 수국이 부럽다.

탐스런 꽃송이를 한껏 뽐내는 옆에 작은 별수국이 있다. 보라색이던 꽃은 보이지 않는다. 감쪽같은 눈속임이다. 잎과 같은 색을 하고 있어서 자세히 보아야 알아차린다. 이 꽃은 왜 숨고 싶었을까. 무엇을 숨기고 싶었을까 묻고 싶어진다.

무엇하나 제대로 잘 해내지 못해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숨이 막힌다. 나 스스로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명이다.

물고기가 모자라는 숨을 쉬기 위해 수면위로 튀어 오르듯이 나도 한 번씩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어딘지 모르는 거리에 누군지도 모를 나로 오롯이 서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여러 번 색을 바꾸는 변덕일지언정 거기에 바로 순응하는 수국이다. 또한 별수국이 초록의 꽃을 피운 건 주어진 환경에 정직하게 표현을 한 증거다. 괜한 꽃에게 물은 건 어쩌면 나에게 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멍에를 다 벗어버리고 숨고 싶은 내 마음을 별수국에게 들킨 셈이 되고 말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수국은 나에게 무언의 충고를 꽃의 미소로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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