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렵, 가재 그리고 전기
천렵, 가재 그리고 전기
  • 우래제 교사 (청주 원봉중)
  • 승인 2017.07.1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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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 우래제 교사 (청주 원봉중)

“앞내에 물이 주니/ 천렵을 하여보세/ 해 길고 잔풍(殘風)하니/ 오늘 놀이 잘되겠다/ 벽계수 백사장을/ 굽이굽이 찾아가니/ 수단화(水丹花)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 촉고를 둘러치고/ 은린옥척(銀鱗玉尺) 후려내어/ 반석(磐石)에 노구 걸고/ 솟구쳐 끓여내니/ 팔진미(八珍味) 오후청(五候鯖)을/ 이 맛과 바꿀소냐.”(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4월령)



가재잡이 천렵을 하자는 친구들의 성화에 많은 일거리 젖혀두고 나섰다.예전에는 모심기 전에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도랑을 쳤다.

지금처럼 수로 정비가 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모심을 때쯤 가뭄이 심하기 때문이다.

노련하고 경험 많은 어른이 가래 장치를 잡고 힘 좋은 젊은이 둘이 양쪽에서 가래 줄을 당기며 도랑을 쳐내려 간다. 도랑을 치다 보면 여기저기 숨어 있던 가재가 나온다. 이 가재잡이는 어린아이들 몫이다.

속담대로 `도랑치고 가재 잡기'다. 꼬리에 알을 잔뜩 품은 가재, 알이 부화되어 어린 가재가 고물고물 모여 있는 가재가 허다하게 잡혔다.

가끔은 껍질이 물렁한 가재도 잡힌다. 이놈은 재수 없다고 버린다. 성장하기 위해 탈피한 덕분에 살아남은 것이다. 이렇게 잡은 가재는 등껍질과 꼬리채를 떼어내고 푸릇푸릇한 마늘과 고추장을 넣고 끓인다. 가재껍질이 빨갛게 익으면 팔진미가 이보다 맛있을까?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 정말 맛있는 특별음식이었다. 옛날 생각에 젖어 있는 사이에 예전에 가재가 많이 잡혔다는 도랑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자마자 시골친구들 하는 말이 전기 들어온 거 보니 가재가 없겠단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도랑을 뒤져보았으나 가재 굴은 흔적도 없었다. 전기가 아니더라도 산성비 등 환경오염으로 가재가 줄어들었을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전기는 가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할 수 없이 가재잡이를 포기한 시골 친구들이 도랑의 돌을 망치로 때리기 시작한다.

망치 소리에 기절한 버들치(중태기)가 떠오르면 족대나 손으로 건져 낸다. 일시적인 큰 충격파가 버들치를 기절(?)시킨 것이다. 혹은 부레가 터져서 떠오른다고도 한다.

그런데 큰 충격파가 버들치의 어느 기관을 손상시켜서 떠오르는지 불확실하다. 그러나 물속에서도 소리가 아주 잘 전달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공기 중의 소리 전달속도는 340㎧정도이나 물속에서의 속도는 훨씬 빨라 1500㎧ 정도가 된다. 밀도가 클수록 소리 전달속도가 빨라지는데 물의 밀도가 공기의 밀도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근처의 작은 연못에서 민물 새우 한 바가지 잡은 다음 매운탕을 끓이려는 순간, 가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한 친구 때문에 예전에 가재가 많았다던 다른 도랑을 찾았다. 그곳에는 전선이 없었다. 덕분에 많지는 않았지만 아주 오랜만에 가재 구경은 할 수 있었다. 버들치, 민물 새우, 가재 몇 마리 넣고 끓인 매운탕으로 행복한 하루였다.

인간의 원초적인 수렵, 채취의 본능에 충실한 덕분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렇게 행복한 천렵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우리 후손들도 이렇게 작은 것에 행복할 수 있을까? 그 많던 가재는 왜 지키지 못했을까? 전기는 가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버들치는 망치의 충격파에 어디가 손상되었을까? 여러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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