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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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승현<청주공예비엔날레 팀장>
  • 승인 2017.07.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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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장맛비가 소강상태인 이른 아침 날씨는 녹색의 에너지와 맞물려 그들에게 인계된다.

어제까지 쌓인 피곤한 몸에 음이온이 휘감기고 흡입되는 듯한 묘한 분위기다. 6월 내내 벌들이 윙윙거리던 담쟁이꽃을 모두 떨구고 녹음의 벽을 만들고, 우산만 한 알로카시아 잎사귀는 개구리 왕눈이가 출현할 듯하며, 공중에 떠있는 박쥐란과 넉줄고사리는 공중의 습기를 쫓기에 왕성한 에너지를 보인다. 벌레잡이 제비꽃은 집안의 벌레가 클 틈도 없게 어느새 세력이 커져 버렸고, 와송의 다육은 터져버릴 듯 수분을 머금어 탱글탱글하다. 싱그럽고도 경이로운 세계다.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신발끈을 매는 나의 눈앞에 꽃대가 보인다. 잎새의 무늬와 색이 독특하고 화려하여 어떻게든 잘 키워보겠다 도전했던 `마란타레오코네우라'라는 녀석인데, 그 화려한 잎 사이를 뚫고 꽃이 올라왔다.

한번 실패를 해서 죽이고, 반음지에 물을 좋아하고, 공중습도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맞추어 성장하기 좋은 조건의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옮기다 이제 성공했다. `잘 커 줘서 고맙다'란 인사를 건네며 출근했다.

삭막한 시멘트건물에 흙을 올려 잔디를 깔고, 벽에 담쟁이를 붙이고, 포도나무와 다래를 심어 그늘을 만들었다. 빛이 좋은 곳에는 다육이를 키우고, 해가 가장 많은 옥상에는 헤이즐넛과 블루베리를 심었다.

계절마다 맛난 먹거리를 끊임없이 내어주는 녀석들은 이제 커다랗고 연륜이 쌓인 식구가 되었다.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에 이제야 자리를 잡았다. `잘 자라줘서 고맙다'

이런 집에 다섯이 산다. 88년부터 자취하던 집, 결혼을 하면서 신혼집을 꾸렸고, 30년 동안 살다 보니 다섯이 덩치가 비슷해졌다. 현관문과 화장실 문을 제외하면 문이 없는 집에 각자 자신의 공간에서 무엇인가에 열심이다. 시험이 끝났다고 뒹구는 중3 막내, 대학을 다니며 용돈을 벌겠다고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다니는 둘째, 방학에 자신이 못한 것을 배워보겠다고 공부와 작업을 병행하는 큰아이, 아침마다 아이들이 늘어놓은 빨랫감을 찾아다니고, 아이들의 식성에 맞추어 매번 다른 요리를 해야 하는 마눌, 회사일에 가족여행도 못 간 우리 가족이지만 늘 아빠를 이해해 주는 내 가족 `이렇게 잘 자라고 함께해줘서 고맙다'. 이런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음은 주변의 많은 조건이 허락해 주었기 때문이다.

2001년 입사 이래 이토록 멋지고 매번 흥분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함께 해준 동료가 있다. 힘든 일인 줄 알면서도 함께 함에 주저하지 않고, 같이 만들어가며 늘 힘이 되어 주려 마음부터 열어준 이들이다. 네일 내일 가리지 않는다.

지금서 생각하면 힘겨운 날이 많았고, 눈물을 흘린 날도 많았다. 그렇지만 함께 했기에 외롭지 않고 이겨나가 이렇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청주가 60여일 앞이면 비엔날레를 연다. 오늘도 열띤 토론과 땀을 통해 함께 한다. 짧지 않은 삶의 시간 속에서 대부분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힘들지만 늘 같이 하는 내 동료들 `고맙다, 같이 있어 함께 함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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