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튀김과 치느님
닭튀김과 치느님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7.07.11 2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요단상
▲ 정규호

미안하지만 음식에 대한 권리 혹은 권력은 이미 미디어가 차지하고 말았다.

세상에 수많은 먹거리가 있고 마음만 먹으면 그깟 한 끼 정도야 큰 부담 없이 먹어치울 수 있는 풍요를 만끽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위 두 문장에 자리하고 있어야 할 주어는 당연히 `인간'이다.

보라!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리모컨을 눌러대는 TV에 얼마나 많은 음식정보가 쏟아져 나오는가. 그 수많은 맛 집들과 군침을 감추지 못하게 하는 레시피들의 홍수 속에 실상 먹거리에서의 인간적 자아의식은 실종되고 있다.

풍요로운 먹거리를 자랑하고 있으나, 정작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양성의 상실이다. 메뉴는 갈수록 단순해지고, `밥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에 대한 처절함은 물론 똑같은 음식의 섭취에 따른 획일성은 결국 창의력을 서서히 잃어버리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느림과 기다림이 실종되고 있는 음식문화는 민족 고유의 문화 상실은 물론이거니와 그저 끼니를 후딱 때우고 다시 일에 쫓기는 인간성의 부재를 걱정하게 한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올 초 새롭게 선보인 문학잡지 <문학3> 창간호에는 주목받는 신진작가 김경욱의 `V: 최근 발굴된 인류세 호모사피언스 유물의 특이점에 대하여'라는 소설이 실려 있다.

(현세의 인간이) 멸망함을 전제로 하는 소설적 상상에는 반드시 `닭'의 흔적이 화석으로 발견되는 기이한 세계를 풍자로 경고한다.

영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인류세 워킹그룹(AWG)'은 35명의 과학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지난해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국제지질학회 회의에서 `지구가 새로운 지질연대인 `인류세'에 접어들었음을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50년대 이후를 현세(Holocene)와 구분하는 인류세(Anthropocen)에는 대규모의 사육으로 인한 닭과 오리 등 가금류의 폭증으로 인한 닭 뼈의 화석화가 지질학적 특징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치느님'으로 까지 신분인 치솟았던 닭요리가 최근 주춤하고 있다. 기껏 `닭튀김'정도의 먹거리가 프랜차이즈를 내세우는 대기업화를 기화로 농단에 가까운 가격 인상을 시도하더니 결국 반발 소비심리를 불러 일으키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

자고 나면 사라지는 프랜차이즈 닭 튀김집의 성황으로 인해 우리 동네에만 불과 1km 남짓한 거리에 무려 13곳의 치킨집이 피 말리는 경쟁을 하고 있다. 거기에는 고용불안정과 더불어, 뚜렷하게 할 일이 없는 직업구조의 허약성이라는 깊고 어두운 경제의 실체가 있다.

`닭 튀김'으로 독점되다시피 하고 있는 먹거리의 단순함. 그리고 동네 상권의 몰락을 부추기는 대형 프랜차이즈의 시장 과점 역시 암울한 앞날을 예고하는 전주곡이 아닐까 우려된다.

무엇이 됐든 집중되거나 편중되면 발전의 속도는 느려지기 마련이고, 이런 과점 및 독점이 심화할 경우 노동소득의 분배율 또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경제 화두는 `더불어 성장'이다. `닭 튀김'이 `치느님'으로 미화되는 건 얼마든지 좋다. 그러나 편식이거나 독식, 편중이거나 독점 등 치우침은 `더불어'를, 그리고 다양함을 결코 만들 수 없다.

오늘은 마침 복날. 얼마나 많은 닭이 인간의 식도를 설레게 한 뒤 숨길 수 없는 많은 뼈를 남길 것인가. 복날의 삼계탕은 그래도 유혹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